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

입력 2012-08-29 10:58:46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지난 2012년 8월 24일과 25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에 대해 국내의 판결과 미국의 배심원 평결 앞에 삼성전자와 애플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나 이제 겨우 1심에 불과하기에 어느 한쪽이 “이겼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삼성전자, 국내에서는 대승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은 애플이 판매 중인 아이폰4, 아이패드1, 2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관련 표준특허(FRAND) 등 삼성전자의 통신관련 특허 2개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도 갤럭시S2, 갤럭시탭 10.1 등에 애플의 ‘바운스 백’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관련 제품 판매를 즉시 금지하고, 애플은 삼성전자에게 4,000만 원, 삼성전자는 애플에게 2,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 1심 판결의 요지다.

얼핏 살피면 양사 모두 동등한 타격을 입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삼성전자가 입은 타격은 미미하고, 애플이 입은 타격은 상당하다고 국내 IT 전문가 및 언론은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침해했다고 알려진 바운스백을 관련 소송이 걸린 직후 업데이트를 통해 제품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제품 판매가 금지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바운스 백이란 화면을 끝까지 스크롤하면 빈 공간이 끌려나오다가 탄력있게 튕기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능이다. 삼성전자도 자사의 스마트폰, 태블릿PC 제품군에 이 기능을 적용했었지만, 현재는 가장자리의 색상을 변경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반면 애플이 침해했다고 알려진 통신특허의 경우 하드웨어적인 문제인 만큼 수정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더군다나 침해한 특허가 표준특허일 경우 배상금만 지급하고 판매를 금지시키지 않았던 기존 관례와 달리 판매금지를 명령한 것이라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시장별로 별도의 모델을 출시하지 않는 애플의 전략에 비추어볼 때 이번 판매금지를 회피하고자 별도로 수정한 모델을 국내에 출시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다만, 이번 판매금지는 3G 기능을 탑재한 제품에 한정되며 와이파이(Wi-Fi)만 탑재한 모델은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다.

애플, 안방에서 웃다

지난 25일, 미국 새너제이(San Jose) 지방법원에서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6건을 침해했다’라며, 10억 4,934만 달러(약 1조 1,900억 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애플이 자사의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완패한 것이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총 7건의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었다. 둥근 모서리 등 스마트폰의 외관, 가느다란 일자형태 디자인의 측면, 내부 사용자 인터페이스 아이콘 배열 형태, 아이패드와 유사한 외관 등 4건의 디자인 특허와 바운스 백, ‘핀치 투 줌(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화면 확대)’, ‘더블 탭(화면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려 확대)’ 등 3건의 기술관련 특허다. 배심원단은 이 가운데 아이패드와 유사한 외관을 제외한 6건의 특허를 삼성전자가 고의로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단 대표인 벨빈 호건(67)은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확신했다”라며,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기업은 어떤 기업이건 간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되며, 가볍게 꾸짖는 수준이 아닌 고통스러울 정도의 배상액을 부과했다”고 이번 평결의 이유를 밝혔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판사가 내리는 판결과 달리 절대적인 효력은 없다. 다만, 법적이나 논리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없다면 판결에 대부분 반영된다. 다음달 초, 루시 고 새너제이 지방법원 판사는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만약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배상액이 줄어들 수도 있으나, 최악의 경우 3배 가까이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극히 이례적이지만, 판사가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은 사례가 없지는 않다. 최근 림(Reach In Motion)과 엠포메이션(Mformation)간의 특허 분쟁에서 배심원단은 ‘림이 엠포메이션에게 1억 4,720만 원을 배상해야’한다고 평결했지만, 판사가 이를 뒤집고 ‘림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양국 법원간 관점의 차이가 이번 결과를 불러

왜 국내 법원과 미국 배심원단은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것일까? 이는 표준특허에 관한 입장차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애플이 제기한 소송에 맞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문제 삼은 것은 인텔의 자회사 인피니언이 애플에게 공급한 통신칩셋이다. 이 통신칩셋에 삼성전자의 특허가 적용되어 있는데, 특허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애플은 인텔에게 지불한 금액에 이미 해당 특허료가 포함돼있어 삼성전자에게 특허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이른바 특허소진론)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국내 법원은 삼성전자의 주장을, 미국 배심원단은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참고로 같은 표준특허라도 계약내용에 따라 해당 특허를 라이선스한 당사자(인텔)가 특허료를 지불하는 경우와 라이선스 받은 제품을 구입한 제3자(애플)도 특허료를 지불하는 경우로 나뉜다.

특허소진론이란 A사가 B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제품을 생산해 C사에게 제품을 판매한 경우 C사가 B사에게 별도의 라이선스 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특허소진론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특허법의 주요 이슈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에 심각한 위협

이번 배심원단 평결을 통해 애플은 핀치 투 줌과 더블 탭이라는 특허로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를 공격할 수 있게 됐다. 바운스 백은 삼성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진영 모두 자사의 단말기에서 삭제했지만, 핀치 투 줌과 더블 탭은 아직도 활용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글의 순정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조차 핀치 투 줌과 더블 탭을 활용하고 있다. 애플은 현재(2012.08.28 기준) 미국 내 강력한 라이벌인 삼성전자, HTC, 모토로라에게만 소송을 제기한 상태지만 LG전자, 화웨이, ZTE 등에게도 소송을 확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가 큰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구글은 삼성전자와 안드로이드 진영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구글은 “이번 평결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침해했는지 확인해볼 것”이라며, “그러나 문제가 된 특허 대다수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 언론은 이번 소송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많은 안드로이드 제조사가 자사의 단말기 ‘갤럭시 넥서스’마저 소송에 휘말린 상태임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구글의 태도에 실망하고 있다는 것. 반면 MS는 구글과 달리 운영체제에 관한 전권을 쥐고 있어 제조사가 라이선스비만 내면 업데이트뿐만 아니라 각종 특허분쟁까지 적극적으로 대처해 줄 수 있기에 윈도폰 진영으로 이탈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배심원제,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다

미국의 배심원제가 이번 배심원단 평결 때문에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특허 분쟁처럼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는 배심원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3명의 법관이 각종 전문 지식을 갖춘 기술사무관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심사숙고해 판단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전문 지식이 부족한 배심원단이 짧은 시간(이번 소송의 경우 22시간)에 700여 개에 달하는 쟁점사항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가능했겠느냐는 지적이다.

미국의 IT전문 매체 씨넷(Cnet)은 배심원들이 주말에 요트를 즐기고자 평결을 조속히 ‘날림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씨넷은 ‘배심원들이 삼성전자의 한 단말기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음에도 (이 단말기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으므로) 애플에게 2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700개에 달하는 쟁점 사항에 표기된 유의사항을 확인하지 않고 평결문을 다 채운 것 같다’고 지적하며, ‘유의사항을 확인하지 않고 개인 평결문을 써내려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미 결과를 정해두고 그에 맞춰 주장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벨빈 호건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이메일을 보고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한 것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많은 쟁점 사항을 확인하고 배심원간 토론을 통해 합의된 결론을 취합해야 하는 배심원단 대표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배심원 중 마뉴엘 일라간은 “삼성전자가 제기한 문제에 관한 논의를 시간 관계상 넘어갔다”라며, “선행기술은 배심원단을 난감하게 했으며, 이 이슈에 관한 논의를 넘어갔기에 평결이 빨라졌다”고 말했다.

지루한 특허전쟁의 1R가 끝났을 뿐

IT업계의 가장 큰 이슈인 삼성전자와 애플간의 특허전쟁은 이제 1R가 끝난 것에 지나지 않다. 따라서 누가 이기고 졌다고 설레발치는 것은 금물이다. 양국에서 나온 이번 판결 및 평결은 1심에 지나지 않고(심지어 미국은 아직 평결에 불과하다. 정식 판결은 다음달 20일 이후에 나온다), 고등법원에서 진행될 2심과 대법원에서 진행될 3심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와 미국의 재판은 진행 양상이 조금 다를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1심과 2심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그리고 그 침해의 위법여부를 판단하는 사실심을 진행하고, 대법원에서 판결에 법적 하자가 없는지 판단하는 법률심을 진행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1심에서만 사실심을 진행하고 2심과 3심 모두 법률심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기업은 국내의 경우 좀 더 본격적으로 상대의 특허 침해를 주장하겠지만, 미국의 경우 삼성전자가 1심의 평결 및 판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CNN은 지난 100년간 디자인 특허 소송으로 연방대법원(3심)까지 올라간 사례가 없다며,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 소송이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온전한 기사는 IT동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IT저널 - IT동아 바로가기(http://it.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