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타자, 그녀들의 야구와 인생] 육상국가대표 출신 나인빅스 김은영

입력 2012-1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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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나인빅스 김은영 코치는 31세의 나이에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 남자 못지않은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4번타자, 그녀들의 야구와 인생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패자 준결승이 열린 4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전북 익산 야구국가대표훈련장은 서울 CMS와 구리 나인빅스 선수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창단 후 한번도 나인빅스를 이겨보지 못한 CMS와 2년간 CMS에 져본 적이 없는 나인빅스의 경기. 결과는 CMS의 승리였다. CMS 4번타자 김혜진 씨와 나인빅스 4번타자 김은영 코치의 명암도 그렇게 엇갈렸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4강까지 올라온 이들의 땀방울은 똑같이 귀하고 아름다웠다. 나란히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을 차례로 만나 인생과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육상국가대표 출신 나인빅스 김은영

구리 나인빅스의 김은영(38) 코치가 달리기를 계속 했다면, 한국육상 여자 100m와 200m 신기록을 보유했을 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고교 1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는데 1년 만에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다시 1년 뒤에는 상비군 꼬리표를 뗐다. 타고난 걸까. 확실히 그렇다. 김 코치의 아버지는 한때 세단뛰기와 멀리뛰기 한국기록을 보유했던 김경성 씨다. 그의 세단뛰기 기록은 15년 동안 깨지지 않기도 했다.

부모는 그래서 더 딸의 운동을 반대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라 선수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늘 집에서 ‘너무 힘들다’며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기회가 왔다. 대전에서 열린 지역 소년체전에 출전선수 수가 모자라자 ‘머릿수 채우기’를 위해 일반학생들을 여럿 출전시켰다. 그 ‘일반학생’이었던 김 코치는 ‘선수’들을 제치고 100m와 200m에서 우승했다. 김 코치는 “다른 애들은 몸에 딱 붙는 육상복 입고 뛰었는데, 헐렁한 체육복 입고 뛴 제가 우승을 하니까 놀랄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그 후 육상에 대한 권유는 더 끈질겨졌다. 결국 고1 막바지에 육상 최고의 명문 서울체고로 전학 갔고, 고3 때 말레이시아 아시아오픈에 출전해 200m 동메달을 땄다. 김 코치의 100m 최고기록은 12초00. 200m도 24초대에 주파했다. 그러나 중앙대 체육교육과 진학 후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다 허리를 다쳤고, 자연스럽게 육상과 멀어졌다.

야구는 ‘만능 스포츠우먼’ 김 코치가 우연히 발견한 신세계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쇼윈도 앞을 지나가다 안에 걸린 TV에서 여자야구단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 그때 나이가 31세. 눈이 번쩍 뜨였다. ‘한번 해볼까.’ 몸이 꿈틀거렸다. 야구를 잘 모르면서도 결국 당시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팀이던 ‘비밀리에’를 찾아갔다. 그리고 몇 년 후 최수정 감독과 함께 나인빅스 창단 멤버로 출발했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오르는 위기도 맞았지만, 팀의 코치 겸 4번타자라는 책임감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김 코치는 “야구는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제가 지금 야구를 한지 만 8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신입 선수 같은 기분이에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이 정도면 됐나’ 하는 순간 ‘아, 이게 아니구나’ 싶은 게 꼭 생겨요.”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CMS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4일의 경험 역시 같은 맥락이란다. “이긴다고 자신하고 나왔는데, 오늘처럼 초반에 변수(1회 5실점)가 생기면 속수무책이잖아요. 구리시에서 지원도 많이 해주셨는데 이렇게 탈락해서 마음이 더 아파요. 다음엔 오늘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익산|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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