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 2부작] 배우보다 더 열정적인 한국 관객 ‘뜨거운 피’ 못 속여

입력 2012-1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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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객들로 붐비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공연장 로비 2. 올해 큰 성공을 거둔 대작 뮤지컬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젬마 릭스) 3. JYJ 멤버 김준수가 출연해 해외팬들의 원정관람 붐을 일으킨 ‘엘리자벳’의 한 장면. 엘리자벳(오른쪽·옥주현)과 요제프 황제(윤영석)가 결혼식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사진제공|설앤컴퍼니·EMK뮤지컬컴퍼니

■ 공연, 관객을 말하다|1부 - 뮤지컬 관객, 달라도 너∼무 달라

올해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1년 2500억원에서 무려 500억원 이상 늘어난 규모다. 올해 개봉한 ‘위키드’, ‘엘리자벳’과 같은 대작들은 3∼4개월의 공연기간 동안 각각 23만 5000명, 15만명의 관객이 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뮤지컬도 이제 ‘100만 관객 시대’를 맞이했다고 이야기한다. 올해 공연계를 결산하면서 키워드로 ‘관객’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객은 공연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소중한 인프라이자 무대의 반대편을 채우는 ‘제2의 배우’들이다. 그런데 관객이라고 해서 늘 똑같지는 않다. 시대와 연령, 나라에 따라 그들의 모습과 성향은 판이하게 다르다.


회전문 관람부터 배우 퇴근길 지키기까지
열성팬들 ‘뮤지컬 100만 관객 시대’ 주도
조용한 일본 관객들도 한국만 오면 환호성

깐깐한 2030 여성, 성숙한 관람 문화 앞장

● 아이돌 콘서트장 방불케 하는 열성팬들

올 여름 ‘위키드’를 공연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만 볼 수 있던 모습. 매회 공연장에는 ‘위키드’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그린과 블랙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여성관객들이 많았다. 주인공 초록마녀처럼 아예 초록색 티로 ‘깔맞춤’을 한 가족관객도 있었다. 한 관객은 초록색 드레스에 마녀모자도 부족해 빗자루까지 들고 오는 열성을 보였다.

최근 공연장의 트렌드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기는 관객이 늘었다는 점이다. 뮤지컬 배우의 팬클럽이 활성화됐고, 마치 아이돌 콘서트처럼 공연이 끝나면 후문이나 주차장에서 진을 치고 배우를 기다리는 ‘퇴근길 지키기’를 하는 관객도 생겼다.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한 달에 20번 이상 공연장을 찾는 ‘슈퍼관객’도 드물지 않다.

뮤지컬에 이렇게 ‘열성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객층이 생긴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이전까지는 마치 클래식 공연장처럼 엄숙한 분위기로 보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자녀가 선물로 준 티켓으로 온 장년층 관객이 많았던 것도 이 시기 특징.

2000년대 되면서 뮤지컬 배우의 팬 카페가 생겨났고, 같은 작품을 수십차례나 보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도 등장했다. 특히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관객층의 폭발적인 확산에 기폭제가 됐다.


● 관람 문화 즐기는 20∼30대 여성, 열성적이고 까다롭고…

요즘 뮤지컬에서 가장 두터운 관객층은 여성 20∼30대. 마니아도 이 세대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이들은 공연 선택 기준이 까다롭고 분명하다. 팬미팅이나 백스테이지 투어 등 공연 외의 이벤트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공연장에서 매너를 가장 잘 지키는 관객층이지만 그런 만큼 다른 관객에 대해 자신들에 맞는 매너도 깐깐하게 요구한다.

설앤컴퍼니 홍보담당 신유미 대리는 “요즘 젊은 여성관객들은 공연시작 2시간 전쯤 도착해 공연장 주변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공연에 앞서 전시물이나 MD상품 등을 느긋이 구경하는 등 뮤지컬 관람의 라이프 자체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에 비해 40대 이상 중년 관객은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와 같은 유명 작품 선호도가 매우 높다. 대신 인지도가 낮은 공연은 잘 찾지 않는다. 젊은층에 비해 여가시간이 많은 편이라 평일 낮 시간을 이용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도 많다.


● ‘점잖은’ 일본 관객도 한국 원정오면 ‘뜨거운 피’

그럼 뮤지컬 산업이 우리보다 발달한 미국과 일본의 팬들은 어떨까. 우선 미국 브로드웨이 관객은 배우를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작곡가, 작가, 연출가 등을 따져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 연령대도 한국에 비해 높다.

일본 관객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다. 공연장에서 환호성을 듣기 어렵다. 대개 잔잔한 박수를 치는 수준이다. 대신 한국이 ‘굵고 짧게’ 박수를 친다면 일본은 3∼5분가량 오래도록 일정한 크기로 친다. 기립박수도 인색해(?) 일본 공연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면 엄청난 찬사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 관객은 ‘뜨거운 피’를 지닌 열혈관객이 많다. 박수, 환호성의 양과 강도가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내한했던 해외 배우들이 커튼콜의 뜨거운 반응에 감동해 다시 한국을 찾고 싶어 할 정도이다.

재미있는 점은 ‘조용한’ 일본관객들도 한국에 오면 ‘한국법’에 따른다는 것. JYJ 멤버 김준수가 주연한 ‘엘리자벳’이나 슈퍼주니어 규현, 샤이니 key가 주연한 ‘캐치 미 이프 유 캔’ 공연장에서는 한국 관객보다 더 열성적으로 환호를 하는 일본 관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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