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제조사들은 일명 ‘프리미엄급’ 혹은 ‘프레스티지급’이라 불리는 고가의 제품을 종종 내놓곤 한다. 다만, 이런 제품들은 성능이나 기능은 좋을지 몰라도 가격이 매우 비싸서 소비자들이 맘 편히 접근하기가 어렵다. 제조사에서도 이런 제품들은 많이 팔기 위해서라기 보단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IT기기 중에서도 이런 제품들이 종종 보이는데, 얼마 전에 IT동아에서 소개한 벤큐의 게이밍 모니터인 ‘XL2420T’ 같은 제품이 대표적일 것이다(http://it.donga.com/review/12339/ 참고). 이 제품은 0.1 이하의 지연시간이나 티끌만한 잔상도 허용하지 않는 프로게이머들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성능이나 부가기능면에서 일반모니터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다만, 인터넷 최저가가 50만원을 넘을 정도로 비쌌기 때문에 단순히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제품을 선뜻 구매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같은 화면 크기의 일반 24인치 모니터는 2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기껏 개발해 놓은 고급 기술을 이런 극히 일부의 제품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단계로 최고급 제품의 주요 기능은 거의 그대로 두면서도 활용도가 낮은 일부 기능을 생략하거나 축소해서 가격을 낮춘 제품을 출시하곤 한다. 이런 제품은 대중(mass)들이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최고급(prestige) 제품에 근접한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매스티지(masstige)’급 제품이라 부르곤 한다.
이번에 소개할 벤큐의 ‘RL2450HT’가 바로 매스티지급이라고 부를만한 제품이다. 최상위제품인 XL2420T의 빠른 화면 응답속도와 극히 높은 동적명암비, 그리고 유용한 게임모드 등의 특성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으면서도 일부 부가기능을 생략해 가격은 30만원 정도로 낮췄다. 실속형 게이밍기어 모니터를 지향하는 RL2450HT의 면모를 살펴보자.
무난한 디자인과 구성,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
상당히 과감한 디자인을 뽐내던 XL2420T에 비해 RL2450HT의 디자인은 수수한 편이다. 사실 모니터라는 제품의 특성상,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위 제품의 특징이었던 좌우회전과 각도 및 높이 조절, 그리고 화면 전체를 90도 회전시켜 상하로 긴 화면을 볼 수 있는 피봇 기능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제품 오른쪽에 가지런히 5개의 제어버튼을 배치한 것은 동일하다. 다만, XL2420T과 달리 화면모드 전환을 원터치로 할 수 있는 전용 리모컨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 외의 차이점이라면 XL2420T처럼 극단적으로 모니터의 높이를 낮출 수는 없으며, 제품 오른쪽의 제어버튼이 터치식이 아닌 일반 버튼식이라는 점이다. 버튼 방식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모니터 높이를 바닥까지 낮추는 기능은 FPS를 플레이 할 때 헤드샷의 적중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니 싱경이 스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걸 단점이라 할 순 없을 것 같다. RL2450HT가 아쉽다기보단 XL2420T가 워낙 특별한 제품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후면 포트의 구성도 평범한 편이다. DVI 포트 및 D-Sub(VGA) 포트, 그리고 HDMI 포트가 1개씩 준비되어있다. HDMI로 입력된 음성신호(HDMI는 영상과 음성을 함께 전달한다)를 외부로 출력할 수 있는 헤드폰 포트도 있지만 이 역시 모니터 후면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꽂아 쓰기엔 조금 불편할 것 같다.
상위 제품의 핵심기능 상당수 그대로 이어받아
RL2450HT의 화면은 24인치의 크기에 1,920x1,080의 풀HD급 해상도를 갖춘 LED백라이트 내장 TN-LCD패널로 구성되어있다. TN계열 패널은 보급형 모니터에 주로 쓰이는 패널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RL2450HT에 TN패널을 탑재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TN패널은 색감이나 시야각면에서 VA나 IPS에 비해 다소 불리한 반면, 응답속도는 훨씬 빠르게 때문이다. VA나 IPS 모니터의 응답속도는 빨라 봤자 4~5ms(1/1000초, GTG기준)에 불과하지만 RL2450HT의 응답속도는 2ms(GTG기준)로, 빠르게 화면이 전환되는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잔상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참고로 상위모델인 XL2420T 역시 2ms의 응답속도를 내는 동일 해상도와 크기의 TN패널을 갖추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120Hz 주사율의 지원여부다. RL2450HT는 120Hz 주사율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XL2420T처럼 3D비전과 결합해 3D모니터로 쓸 수 없으며, 이론적으론 잔상 발생 가능성이 XL2420T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모니터 시장에서 120Hz 주사율을 지원하는 모니터는 극히 소수이며, 3D화면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정규 프로게임 리그도 없다. 이 역시 RL2450HT의 단점이라기보단 XL2420T의 특별함이 두드러지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2ms의 응답속도만 보더라도 잔상 발생 가능성은 여느 모니터보다 낮다.
RL2450HT이 XL2420T와 닮은 점은 또 한가지 있다. 바로 어두운 배경에 가려진 자그마한 물체까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1천2백만 대 1의 동적명암비, 그리고 어두운 부분을 밝게 보정하면서 밝은 부분의 색감을 훼손하지 않는 블랙이퀄라이저(Black eQualizer) 기능이다. 이를 활성화시키면 스타크래프트2와 같이 주변 배경이 유난히 어두운 게임을 플레이 할 때, 혹은 FPS에서 섬광탄을 맞았을 때 상대적으로 시야확보에 유리하다.
XL2420T는 FPS, RL2450HT는 RTS 특화?
RL2450HT의 이러한 각종 기능은 제품 우측의 제어버튼을 이용해 활성화시킬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게임을 번갈아 즐기는 사용자를 위해 사용자가 각자의 취향에 맞는 화면 설정을 최대 3개까지 저장해 전환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RTS(실시간 전략 게임)’ 모드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이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을 할 때 적합한 설정을 미리 지정해 놓은 화면모드다.
상위 모델인 XL2420T의 경우는 RTS 외에도 FPS 모드가 2개나 더 있던 것이 특이했는데, XL2420T가 FPS에 특화되어 있다면 RL2450HT는 상대적으로 RTS를 하기에 좀 더 적합하다는 제조사의 메시지인 것 같다. 물론 RL2450HT로 FPS를 하더라도 일반 모니터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화면의 비율(16:9, 16:10, 4:3)을 사용자가 임의대로 변경할 수 있는 고정종횡비 표시기능, 표시 화면의 크기(24인치, 21.5인치, 16인치, 17인치)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스케일링 기능 역시 XL2420T와 마찬가지로 빠짐 없이 갖췄다. 이 정도면 게이밍 모니터로선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RTS 뿐 아니라 FPS에도 여전히 유용
다음은 RL2450HT를 이용해 직접 게임을 플레이 해 볼 차례다. 플레이 해 본 게임은 스타크래프트2 등의 RTS와 서든어택 등의 FPS, 그리고 디아블로3 등의 RPG다.
RL2450HT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화면은 약간 색감이 과장된 느낌이면서도 화면 전체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특히 RTS 모드의 경우는 화면 전체가 약간 거칠게 보일 정도로 디테일이 두드러진다. 처음 보면 이런 화면에 어색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화면에 표시되는 유닛이나 구조물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시선에 잡아둘 수 있으며, 특히 스타크래프트2 플레이 시, 화면 외곽 어두운 부분의 상태도 상대적으로 잘 보인다는 점에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듯 하다.
그리고 XL2420T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은 RL2450HT에서도 확실히 유용하다. FPS 플레이 시 섬광탄 공격을 당했을 때 눈부심을 상대적으로 저감시킬 수 있고 눈부심이 해소되는 시간도 빠르기 때문이다. 120Hz 주사율은 지원하지 않지만 잔상의 발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상의 부드러움을 원한다면 이는 일반인보다는 프로게이머의 영역일 것이다.
1승 추가에 목마른 열혈 게이머들을 위해
앞서 RL2450HT를 매스티지급 제품이라 소개한 바 있는데, 실제로 제품을 살펴보니 과연 그러하다. 상위 제품의 핵심적인 기능을 상당수 그대로 이어받았으면서도 가격 부담은 훨씬 적기 때문이다. XL2420T는 좋은 제품이긴 해도 구매를 추천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었는데, RL2450HT의 경우는 보다 편하게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게이밍 모니터라는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게임을 그다지 하지 않는 사용자에게는 여전히 가격대비 성능이 좋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1킬, 1승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 일반모니터에 비해 10만원 정도는 더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혈 게이머들에게 이 이상의 제품은 없을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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