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부야 츠타야의 한국 드라마만을 모아둔 코너 2.한류를 느끼려면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를 가보자. 신오쿠보역 출구 바로 옆의 대형 한류백화점. 이 곳에는 50여개의 한류숍들이 자리하고 있다 3. 장근석이 이달 중순 도쿄 시부야에서 문을 연 브랜드 카페 ‘직진’. 도쿄(일본)|백솔미 기자
1. 배용준이 말하는 한류
2. 한류의 힘, 스타를 얻다
3. 한류 현장을 가다
4. ‘신대륙’의 꿈
5. 미래 10년의 주역을 만나다
6. ‘포스트 한류’, K-컬처로 간다
10년전 드라마 ‘겨울연가’ 신선한 충격
한인타운 50여곳 상점 여성고객들 발길
길게 줄선 ‘장근석 공연’ 암표상 등장도
쓰나미·경기침체·냉각된 한일 관계…
지나친 상업주의 탓 열기 정체 큰 걱정
장기적 관점·새로운 콘텐츠 개발 절실
이달 14일 오후 일본 도쿄. 전철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의 하나뿐인 출구를 빠져나와 오른편으로 향하니 ‘작은 한국’이 펼쳐진다. 50여곳의 상점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가요와 몇몇 호객꾼의 우리말 목소리가 이 곳이 ‘한류의 성지’임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 ‘겨울연가’의 신선한 충격, 10년의 열기
이 곳은 2004년 ‘겨울연가’의 인기로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판매하는 상점이 들어선 뒤 형성된 ‘한인타운’이다. 현재는 뷰티숍, 식당 등은 물론 한국의 채소 등을 파는 ‘서울시장’이라는 이름의 시장까지 생겨났다.
신오쿠보는 한류 콘텐츠를 좋아하는 일본 지방 사람들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4월 새 학기를 맞는 10대들도 눈에 띄었다. 나고야에서 온 10대 요시아키 양은 “한국 드라마를 보는 엄마를 통해 한국을 알고 케이팝을 접하게 됐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몇 명 있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나기사 씨는 “신오쿠보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베스트 쇼핑센터’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손에는 장근석, 동방신기, 카라 등의 모습이 담긴 한류 상품이 들려 있었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하라주쿠역 인근 거리에서도 한류 상품들은 여전히 인기가 좋다.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팬으로 하라주쿠역 건너편 타케시타도리의 한류숍을 찾은 여중생 메구미와 리에 양은 “1년 전부터 케이팝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여주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대로다. ‘욘사마’가 한류를 대표하지만 지금은 여러 스타들이 한류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했다.
DVD와CD를 전문적으로 대여하고 판매하는 시부야의 츠타야와 타워레코드 등에는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코너가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츠타야는 ‘지금 주목할 한류배우 콜렉션’이란 타이틀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스타의 작품만을 모아놓은 코너도 따로 마련해 놓았다. 츠타야의 한 점원은 “한류 드라마와 케이팝 코너가 예전에 비해 커졌다. 각 방송사가 한국 드라마를 예전보다 덜 방송하면서 오히려 DVD 등 판매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제2의 욘사마’로 불리며 일본 한류를 이끌고 있는 한류스타 장근석. 사진제공|트리제이컴퍼니
● “아리가또, 근짱”…장근석 공연 열기 후끈
이 같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스타로 향할 때 그 열기가 뜨거워진다. 13일 장근석이 프로젝트 그룹 팀에이치 공연을 펼친 마쿠하리메세에서 만난 60대 사오리 씨는 “공연이 끝나고 장근석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서 “장근석의 인기는 최고조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장 주변에서는 비키니 차림의 젊은이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까지 장근석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인근 카이힌마쿠하리역 앞에는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비싼 가격에라도 표를 사겠다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었다.
이처럼 한류는 지난 10년 동안 일본 그리고 일본인들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일본 한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한 10여 년 전, ‘겨울연가’를 NHK에 수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현재 현지 한류 사업을 펼치고 있는 김대규 디지코아㈜ 대표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일 월드컵이 기회가 됐다. 자연스럽게 일본이 한국에 관심을 가질 때 NHK의 문을 두드려 보자고 생각했다”고 되돌아봤다. 한국에서 성공한 ‘겨울연가’가 일본에서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주효했다.
‘겨울연가’는 결국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시부야 타워레코드를 찾은 40대 마키코 씨는 “당시 드라마가 안겨준 순수함은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면서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해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이처럼 ‘겨울연가’ 이후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와 스타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상당한 경제적·문화적 파급 효과를 몰고 왔다. 닛칸스포츠 쿠보 편집장은 “한류를 통해 ‘가깝지만 먼 나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배용준 등 한류스타들의 역할도 컸다”고 말했다.

한류 팬들로 북적이는 신오쿠보와 하라주쿠의 한류숍. 도쿄(일본)|백솔미 기자
● 정체된 한류…“콘텐츠가 생명”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이들은 현재 그 열기가 정체된 느낌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특히 한류와 직접적 연관을 맺고 있는 이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았다. 신오쿠보 삼겹살 식당의 점원은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2011년 일본 동북부 쓰나미, 경기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밝혔다. 40대 여성 마유키 씨와 30대 나기사 씨도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이 곳을 찾는데 확실히 1년 전보다 방문객이 줄었다. 열기도 평범해졌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 등 지난해부터 냉각된 한일 관계에서 작은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10대 나호 양은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독도 문제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류 팬들이 조금 줄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케부쿠로, 다이칸야마 등에서 만난 20대 젊은이들은 아예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많았다. 와세다대학에서 만난 대학생들도 공통적으로 “한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진 않다”며 “한류를 좋아하는 사람과 흥미가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일간 정치외교적 관계가 한류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라는 의견에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대부분 공감했다. 이들은 “독도 문제와 한류는 큰 관련이 없다. 정치와 문화는 별개이다. 한류를 좋아하는 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며 그것이 단박에 사그라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이제 일본의 한류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더 많이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는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닐까. 김대규 대표는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한류를 비즈니스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일부 콘텐츠 생산자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나치게 상업주의적인 태도는 장기적 관점에서 좋지 않다”면서 “하나 더 팔아서 돈 좀 더 벌어 보자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쿄(일본)|백솔미 기자 bs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sm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