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40세 송지만 “난 아직도 야구한다”

입력 2013-05-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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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통산 310홈런, 1027타점, 1861안타. 박찬호, 조성민, 박재홍 등 ‘황금의 92학번’ 중 가장 빛나는 기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넥센 송지만은 한국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친구들 중 가장 오래도록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황금의 92학번들 속속 은퇴 불구 나홀로 현역
“대타면 어때…벤치서도 지도자연수 하는 셈
즐기다보니 타율 0.357·오승환에게 홈런도”
불펜찾아 동료투수들 공 보며 실전감각 열공


“이렇게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게 어딥니까. 즐겁습니다.” 넥센 송지만(40)은 3일 목동구장 덕아웃 앞에서 타격훈련을 위해 방망이를 고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그의 나이도 불혹. 세월의 흔적일까. 그가 웃자,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돌출돼 보이는 입가로 주름이 더욱 짙게 패였다. 한때 ‘황금의 92학번’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야구사에서 한 획을 그은 1973년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박재홍, 차명주, 최원호, 전병호, 설종진, 홍원기, 이영우, 김종국, ….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던 동기들도 세월까지 이겨내지는 못했다. 어떤 이는 지도자로 변신했고, 어떤 이는 야구계를 떠났고,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이제 ‘황금의 92학번’ 중에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는 선수는 송지만이 유일하다.


○벤치워머? 야구를 하고 있어 행복!

그러나 송지만 역시 이젠 전력의 뒤편으로 물러서고 있다. 올 시즌 첫 출장경기인 4월 13일 목동 삼성전에서만 유일하게 선발 출장했고, 나머지는 모두 교체 멤버로 나섰다. 말 그대로 ‘벤치워머’다. 통산 1912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2, 310홈런, 1027타점을 기록 중인 타자가 벤치나 덥히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지 않을까. 세월이 야속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동기들이 다 은퇴했는데 이렇게 야구를 하고 있는 게 어디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어쩌다 한 번씩 타석에 서지만 그래도 즐겁다”며 선한 눈웃음을 쳤다.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공부다. 여기 앉아 있으니 시야가 더 넓어지는 느낌이다. 나도 이제 서서히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 아니냐. 동기들은 나보다 일찍 은퇴해서 지도자 생활도 일찍 시작했다. 내가 선수생활은 오래하지만 지도자로는 뒤처져 있다. 남들은 돈 주고 연수를 가는데 난 여기 벤치에 앉아서 공짜로 지도자 연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송지만은 핵심전력에서 비켜나 있지만 불평불만 없이 후배들을 격려하고 벤치에서 선배 몫을 다해내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이에 대해 송지만은 “내가 타석에 나설 때면 후배들이 이제 나를 격려해준다. 날 챙겨주는 후배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타석을 즐기니 오승환에게 홈런도 치더라!

버리면 얻고,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던가. 욕심을 버리니 야구가 즐겁다. 즐기다보니 방망이도 가볍게 돌아간다. 3일까지 14타수 5안타로 0.357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중에는 홈런 한 방과 5타점도 곁들여져 있다.

“이젠 정말 즐기면서 타격한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오승환(삼성)한테 홈런도 쳤다. 지금까지 오승환에게 안타 한두 개 쳤나? 예전엔 타석에서 ‘오승환 공 안타 한번 쳐야지’ 하고 욕심을 내도 잘 안 됐는데, 욕심을 비우니 홈런이 나오더라. 허허.”

4월 14일 목동 삼성전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홈런을 때린 것을 두고 자랑한 것이다. 통산 300홈런 이상을 뽑아낸 대타자가 홈런 한 개 보탰다고 불혹의 나이에 애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송지만은 “요즘 불펜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라고 밝혔다. 실전에서 던지는 투수의 공을 마주할 기회가 적다보니 불펜에서 동료 투수들이 전력투구하는 것을 눈으로, 몸으로 익히고 있다. 어쩌다 주어지는 타석. 즐기기 위해선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이날도 타석에 들어설지, 못 들어설지 모르지만 그는 장인처럼 신중하게 방망이를 골랐다. 그리고는 후배들의 타격훈련이 모두 끝난 뒤 배팅케이지에 들어서서 배트를 돌렸다.

목동|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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