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짜리 단편 ‘세이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품다

입력 2013-05-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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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이프’의 한 장면. 사진제공|신영균예술문화재단

서른살 문병곤 감독, 한국영화 첫 수상 영예

사무 보조원과 빵 포장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번 돈 300만원을 영화에 쏟았다. 10여명의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서울 강남의 한 주차장에서 먼지 마시며 영화를 찍었다. 무려 4개월이나 편집에 시간을 들였다. 열정과 노력으로만 가능했다. 이제 나이 갓 서른을 넘긴 문병곤 감독은 그렇게 힘겨운 과정 끝에 한국영화사에 남을 쾌거를 안으며 그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았다.

문병곤 감독의 단편영화 ‘세이프’가 27일 새벽(한국시간) 막을 내린 제6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800만원의 제작비로 전 세계 영화계에 한국 단편영화의 명성을 알리며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이 그 탄탄한 밑바탕에서 출발한 것임을 입증한 셈이다.

한국 단편영화는 1999년 송일곤 감독이 ‘소풍’으로 칸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또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이 단편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양효주 감독의 ‘부서진 밤’도 당시 은곰상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병곤 감독은 이날 스포츠동아와 나눈 전화인터뷰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여기저기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며 웃었다. 이어 “다양한 앵글을 구성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내 제작 진행이 미숙했던 탓이다”며 겸손해 했다. 그는 “메시지에 힘이 있다는 점을 영화제 측이 인정한 것 같다”고 수상 배경을 짐작했다.

‘세이프’는 불법 게임장의 환전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13분 분량의 이야기. 이 곳에서 일하는 여대생과 도박에 중독된 남자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와 금융자본주의의 암울한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문 감독이 800만원의 전체 제작비 가운데 자비 300만원을 들여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나머지 500만원은 지난해 신영균문화재단의 단편영화 창작지원 사업인 필름게이트를 통해 지원받았다. 또 문 감독이 중앙대 재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본격적으로 만든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재능과 열정을 읽게 한다. 그는 2011년 대학 졸업 작품인 단편영화 ‘불멸의 사나이’를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상영한 바 있다.

‘세이프’의 수상은 단편영화가 장편영화 제작은 물론 그 질적인 수준을 담보하는 인적·예술적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단편영화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고 영화계는 입을 모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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