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개막 11연승에 빛나는 ‘무패의 오드 아이’ 슈어저

입력 2013-06-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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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맥스 슈어저

흔히 인생살이를 ‘운칠기삼(運七技三)’으로 표현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성패가 노력 못지않게 운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야구에서도 통용되는데, 올 시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우완 선발투수 맥스 슈어저(29)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개막 11승 무패 기록…지난 40년간 5번째 투수
지난해 생애 최다 16승 넘어 첫 사이영상 도전도

경기당 7.84점 타선 지원…5이닝 5실점도 승리
러키 가이? 160km대 강속구 등 실력이 뒷받침


23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 개막 이후 10연승을 달려온 슈어저가 마운드에 올랐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한 슈어저는 1회초 연속안타를 맞고 무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더스틴 페드로이아를 병살타로 유도했지만 3루주자가 홈을 밟았고, 이어 데이비드 오티스가 우월솔로아치를 그렸다. 1회에만 21개의 공을 던지며 2실점한 슈어저의 연승행진에 제동이 걸릴 듯했다. 그러나 타이거스 타선은 1회말 빅터 마르티네스의 우월 그랜드슬램으로 슈어저에게 바로 2점차 리드를 안겼다. 타선의 도움으로 어깨가 가벼워진 슈어저는 이후 3안타만 더 내줬을 뿐 추가실점 없이 7이닝 2실점으로 역투해 시즌 11승째를 따냈다. 이날 승리로 슈어저는 지난 40년간 개막 후 11승 무패를 기록한 5번째 투수가 됐다.

1986년 보스턴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는 14승 무패로 시즌을 출발해 결국 24승4패, 방어율 2.48로 생애 첫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클레멘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던 1997년에도 11승 무패로 시작해 21승7패, 방어율 2.05로 마쳐 역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1978년 뉴욕 양키스 에이스 론 기드리 역시 13승 무패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끝에 25승3패, 방어율 1.74의 눈부신 성적으로 자신의 유일한 사이영상을 품에 안았다. 반면 1985년 11연승으로 출발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앤디 호킨스는 18승(8패)에 그치며 사이영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시속 155km를 넘나드는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운 슈어저는 올 시즌 등판한 15경기에서 최소 6개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는 1900년 이후 4번째에 해당된다. 이 부문 최고 기록은 ‘빅유닛’ 랜디 존슨이 보유하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를 떠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옮긴 첫 해인 1999년 존슨은 35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전 경기에서 최소 6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 해 존슨이 솎아낸 삼진은 무려 364개였다. 이처럼 슈어저는 사이영상 수상자들에 버금가는 성적으로 올 시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올 시즌 방어율 3.05를 기록 중인 슈어저는 메이저리그 최다인 경기당 평균 7.84점의 득점지원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러키 가이’가 따로 없다.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 7일 양키스전에서 5이닝 동안 4점을 내줬지만 타선과 불펜의 도움으로 행운의 첫 승을 따냈다. 이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시애틀과의 원정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도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으나 4월 2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5이닝 5실점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2승째를 얻었다.

연승행진이 중단될 뻔한 최대 위기는 5월 1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이었다. 슈어저는 7회까지 홈런 두 방을 허용하며 5점이나 내줬다. 그러나 4-5로 뒤진 6회말 타이거스가 1점을 뽑아내 패전 위기에서 벗어났다. 결국 이 경기에서 타이거스는 5-7로 패했으나 슈어저는 승패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도 6월 4경기에선 27이닝을 던져 단 6점만 내주는 짠물 피칭 속에 전승을 거두며 운만이 아니라 실력도 뛰어남을 입증하고 있다.

슈어저의 피칭 스타일은 디트로이트의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와 매우 흡사하다. 최고 100마일(161km)에 육박하는 강속구, 145km의 고속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주요 레퍼토리다. 간혹 100km의 느린 커브를 던져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상대팀 입장에선 타이거스와의 3연전 때면 2명의 벌랜더를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슈어저의 승리 소식이 이어질 때마다 가장 속이 쓰린 구단은 애리조나일 것이다. 미주리주 출신의 슈어저는 고교 졸업반인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43라운드, 전체 1291번째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됐지만 대학 진학을 택했다. 대학에서 착실히 기량을 연마한 뒤 200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1번으로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됐다. 슈어저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1년에 그쳤다. 그만큼 애리조나 구단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슈어저는 빅리그 데뷔전이었던 2008년 4월 30일 애스트로스전에서 구원 4.1이닝 동안 삼진을 7개나 잡아내며 13타자를 연속 범타로 처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다음날 다이아몬드백스는 그를 선발로테이션에 합류시킨다고 밝혔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루키 시즌 슈어저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4패만 당했다. 16경기(7선발)에서 방어율 3.05를 기록하며 비교적 선전했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2009년 슈어저는 5선발 자리를 꿰찼다. 5월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둔 그는 총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9승11패, 방어율 4.12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애리조나는 2009년 12월 선발투수진 보강을 위해 슈어저를 필 코크, 오스틴 잭슨과 함께 타이거스로 트레이드했다. 그 때 애리조나가 받은 투수가 최근 다저스 잭 그레인키를 고의로 맞혔던 이언 케네디와 우완 강속구투수 에드윈 잭슨(현 시카고 컵스)이다.

아메리칸리그로 둥지를 옮긴 슈어저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3년 연속 최소 12승 이상을 거두며 디트로이트의 주축 투수로 거듭났다. 2010년 5월 31일 어슬레틱스전에선 5.2이닝 동안 무려 14개의 삼진을 잡아내 코메리카파크 개장 이후 제레미 본더맨(현 시애틀)이 지니고 있던 최다 탈삼진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12승11패, 방어율 3.50으로 2010시즌을 마친 슈어저는 이듬해 팀의 3선발로 도약했다. 개막 후 6연승을 달리는 등 15승 투수로 도약했지만 피홈런(29개) 3위, 폭투 4위, 사구 5위에 오르는 등 불안한 모습도 드러냈다.

오프시즌 제구력을 가다듬은 슈어저는 2012시즌 ‘닥터 K’의 면모를 과시하며 특급투수로 성장했다. 5월 21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선 7이닝 동안 무려 15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등 총 187.2이닝을 던져 231탈삼진을 기록했다. 239개로 아메리칸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한 벌랜더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러나 9이닝당 평균 탈삼진에선 11.1개로 슈어저가 단연 1위였다. 생애 최다인 16승(7패)을 거두며 정규시즌을 마친 그는 포스트시즌에서도 3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무패, 방어율 2.08의 인상적 활약을 펼쳤다.

2013년 패배를 모르는 남자로 거듭난 슈어저는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홍채이색증(Heterochromia iridum)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오른쪽은 파란색, 왼쪽은 갈색인데 2011년 6월 디트로이트 구단은 슈어저의 버블헤드 인형을 만들 때 두 눈의 색깔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 생애 첫 올스타전 선발이 확실시되고 있는 슈어저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의 도움 없이는 승리를 따낼 수 없는 법”이라며 “지금까지는 운 좋게 패전을 당하지 않았지만, 마운드에 설 때마다 우리 팀이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로 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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