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의 전성기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친다. 너무 어리지도 않지만 노장 축에 속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경험을 갖췄고 아직 팔팔하게 힘이 붙어 있는 그런 나이다.
‘거미손’ 이운재(1973년생)는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4강 신화를 이끌었던 2002한일월드컵 때가 만으로 29세였다. 박지성(1981년생)도 만 29세였던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한국을 원정 첫 16강으로 이끌었다.
2014브라질월드컵 때 만 29세가 되는 선수들은 1985년생이다.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동아시안컵(7월20~28일)에 나설 23명 엔트리를 11일 발표했다. 유럽파는 제외됐고 국내, 일본 리그에서 뛰는 선수 위주로 구성됐다.
홍명호보 1기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피들인데 1985년생 소띠 4인방이 눈에 띈다. 골키퍼 정성룡(수원 삼성)과 오른쪽 풀백 김창수(가시와 레이솔), 미드필더 하대성(FC서울), 공격수 서동현(제주 유나이티드)이 주인공이다. 사이좋게 포지션별로 1명씩 뽑혔다.
● 두 번째 월드컵 꿈꾸며
정성룡은 자타공인 국내 넘버1 수문장이다.
정성룡은 2010남아공월드컵 때 대선배 이운재를 제치고 주전을 꿰차며 16강을 이끌었다. 월드컵 첫 출전의 정성룡에게 골문을 맡겨도 되는 것이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실력으로 깨끗하게 잠재웠다. 정성룡은 홍명보 감독에게도 큰 신뢰를 받고 있다. 정성룡은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 3명의 와일드카드(23세 이상) 중 1명으로 발탁이 유력했지만 소속팀 사정으로 나서지 못했다.
홍 감독은 작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정성룡을 와일드카드 1순위에 올렸고 최종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정성룡은 브라질과 4강전을 제외한 전 경기를 뛰며 동메달 신화의 주역이 됐다. 정성룡이 브라질 무대를 밟게 된다면 두 번째 월드컵 출전. 농익은 기량으로 골문을 든든히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 무주공산 오른쪽 풀백 자리 잡나
김창수도 정성룡과 마찬가지로 런던올림픽 와일드카드로 홍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김창수는 런던올림픽팀의 약점으로 꼽히던 오른쪽 풀백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냈다. 사실 오른쪽 풀백은 올림픽팀뿐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붙박이 주전선수가 없다. 작년 올림픽이 끝난 뒤 김창수에게 많은 기대가 모아졌지만 그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대표팀에서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김창수가 무주공산이 된 오른쪽 풀백에서 주전을 꿰찰 수 있을지 관심이다.
● 리그 최고 중원사령관 대표팀도 접수
하대성은 K리그 최고 중원사령관이다.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영리함, 넓은 시야, 창의적인 패스를 모두 갖췄다. 그러나 대표팀에만 가면 작아졌다. A매치 7경기 출전이 전부다. 이유가 뭘까. 하대성이 기술에 비해 투지나 몸싸움 등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하대성은 과거 K리그에서 최고였지만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던 신태용 전 성남 일화 감독의 회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내가 대표팀에서 활약이 미미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지 문제도 있었다. 그 때는 (홍)명보, (황)선홍 형 뿐 아니라 그 위에도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했다. 선배들의 플레이에 나를 맞춰줘야한다는 생각이 많았고, 내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스스로 잡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하대성은 홍명보 감독과는 특별히 한솥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하대성의 플레이를 칭찬하며 늘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한다. 하대성은 내년이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강하게 욕심을 내야 한다. 팀 정신에 마이너스가 되는 플레이를 하라는 게 아니다. ‘나도 대표팀에서 주전 미드필더가 될 수 있다’ ‘하대성의 진가를 대표팀에서도 보여 주겠다’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태극마크로 부활의 정점
서동현은 2008년 12월 이후 4년7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서동현은 2006년 수원 삼성에 입단할 때 가장 주목 받는 신인이었다. 프로 3년차이던 2008년 수원이 정규리그와 리그 컵을 석권할 때는 13골2도움으로 2관왕 주역이 됐다. 2008년 후반기에는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꾸준히 받으며 월드컵 출전도 꿈꿨다. 하지만 이후 부상 등이 겹치며 슬럼프를 맞았다.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고 강원FC에 이어 제주로 둥지를 옮겨 다녔다.
서동현은 제주에서 부활했다. 작년 12골3도움으로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고 올해도 3골5도움으로 제주의 상승세를 이끌어 홍 감독의 눈에 들었다. 서동현은 태극마크로 부활의 정점을 찍겠다는 각오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