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가예 케베데-하지 아데로-그룸 센베토(맨 왼쪽부터). 모스크바|전영희 기자
세계육상선수권 남자마라톤 ‘2·3·4위’
에티오피아인에게 달리기는 삶 그자체
우승하면 인생역전…헝그리 정신 무장
선수자원 풍부해 외국으로 수출하기도
에티오피아는 18일(한국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막을 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금 3개, 은 3개, 동 4개로 종합 순위 6위에 올랐다. 자국의 세계선수권 출전 역사상 최다메달(10개) 획득이었다. 모스크바를 습격한 에티오피아 육상, 그들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회기간 중 만난 에티오피아 마라톤 대표팀 하지 아데로 코치, 마라톤 대표선수 체가예 케베데(26), 에티오피아 주간지 ‘아디스 아드마스’의 그룸 센베토 기자의 얘기를 종합했다.
● ‘달리기는 삶’ 장작 팔던 소년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에티오피아는 17일 열린 남자마라톤에서 2·3·4위를 휩쓸었다. 이 가운데는 눈에 띄는 단신 마라토너가 있었다. 바로 4위에 오른 케베데다. 조직위원회 배포자료엔 신장이 160cm로 돼 있지만, 본인은 “사실 그것도 안 된다”며 미소 지었다. 케베데는 개인 최고기록이 2시간4분38초로, 이번 대회 출전한 6명의 에티오피아 마라토너 중 가장 좋았다. 2008베이징올림픽 동메달, 2012시카고마라톤·2013런던마라톤 1위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센베토 기자는 “케베데가 원래는 마라토너가 아니었다. 장작 모으는 일을 했었다”고 귀띔했다. 케베데는 학창시절 수업이 끝나면, 땔감을 찾아 매일 밤 6km를 달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전문 마라톤 코치에게 발탁됐고,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책보를 메고 십리 길을 뛰어 통학했던 우리의 과거처럼,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다. 전문선수가 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다리와 심장을 단련하는 셈이다. 심지어 취재진들도 잘 달린다고 한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동아프리카인들은 선천적으로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리학적 설명도 곁들였다.
● ‘달리기는 돈’ 국제 대회 우승하면 인생역전?
에티오피아는 최빈국의 대명사로, 2010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00달러(약 45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에게 달리기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다. 케베데는 “마라톤으로 인해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좋은 집도 있고, 도요타 코로나와 하이룩스 등 자가용도 두 대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13남매 중 다섯째인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4위 상금 1만5000달러(약 1680만원)를 챙겼다. 가족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안겨주게 됐다.
센베토 기자는 “이번 대회 우승상금이 6만 달러(약 6700만원)인데, 에티오피아에선 엄청나게 큰 돈이다. 800m 금메달리스트 모하메드 아만은 19세의 신예인데, 바로 부자가 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헝그리 정신’이야말로 중·장거리, 마라톤의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다. 아데로 코치는 “마라톤의 경우, 주당 훈련 거리가 180∼190km 정도 된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에티오피아 선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워낙 선수 자원이 풍부하다보니, 외국으로 수출을 하는 일도 있다. 이번 대회 스웨덴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긴 아베바 아레가위(여자 1500m)는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외신 등에는 스웨덴인 남편을 만나 자연스럽게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돈을 받고 국적을 바꾼 것”이라는 게 에티오피아 취재진의 설명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역시 현재 외국 마라토너의 귀화를 추진 중이다. 한국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가 또 다시 우리를 위해 싸울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