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프리즘] 이종욱과 암투병 소년팬의 만남 스포츠의 다른 이름은 감동이다

입력 2013-09-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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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이종욱. 스포츠동아DB

두산 이종욱. 스포츠동아DB

스포츠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정정당당한 경쟁 속에서 펼쳐지는 명승부는 스포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입니다. 프로야구에서도 숱한 명승부가 펼쳐지면서 다양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의 감동은 명승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훈련·성장 과정, 팬들과의 인연 등도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잠시 제 경험담을 꺼내보겠습니다. 저는 고교생이던 1990년대 후반,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보다가 뉴욕 닉스의 슈터 앨런 휴스턴(은퇴)의 플레이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NBA선수 카드가 유행이었는데요. 휴스턴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편지와 함께 카드를 항공우편봉투에 넣어 닉스 구단 주소로 보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바로 휴스턴이었습니다. 편지 안에는 제가 보냈던 카드가 담겨있었습니다. 그의 사인과 함께 ‘God bless(축복이 있기를)’라는 메시지도 적혀있었습니다. 이후 휴스턴의 슛과 드리블 하나하나는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10년여가 흐른 2008년 휴스턴은 NBA 행사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저는 기자로 성장해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휴스턴에게 고교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만나게 돼 반갑다. 좋은 기억을 남겼다니 나도 기분 좋다”며 반겼습니다. 다시 한 번 카드에 휴스턴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휴스턴은 이번에도 사인과 함께 ‘God bless’라는 메시지를 정성스레 써줬습니다. 제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8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건이라는 친구와 두산 이종욱 간의 감동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건이는 4월 림프종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학교생활을 중단해야 했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어린시절 모친과의 이별에 상처받고 큰 병까지 안게 된 건이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두산의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일곱 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건이는 이종욱의 플레이에 매료됐고, “이종욱 선수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는군요. 이를 본 부천시청 사회복지사 신명숙 씨는 두산 홈페이지에 그 사연을 올렸고, 비로소 건이는 자신의 영웅인 이종욱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사연을 접한 이종욱은 8월 9일 모처럼의 휴식일을 맞아 항암치료 중인 건이를 직접 만났고, 야구장 초대를 약속했습니다. 약속대로 건이는 31일 잠실구장을 찾았습니다. 이종욱의 안내로 선수단 라커룸을 구경하고, 시구(31일 경기는 시구 후 갑작스런 폭우로 취소)까지 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앞으로 2년여의 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이에게 이종욱과의 만남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2년 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시구를 하는 건이의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이종욱 아저씨와의 만남이 치료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됐다”는 건이의 말을 듣게 될 이종욱도 어느 때보다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되지 않을까요. 이종욱의 안타 하나하나는 건이에게 추억과 감동의 안타가 될 것입니다. 제가 휴스턴에게 느꼈던 것처럼 말이지요. 스포츠는 감동입니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topwoo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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