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덴버에선 조던만큼 유명…‘전설의 17번’ 헬튼, 아듀!

입력 2013-09-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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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콜로라도맨 토드 헬튼

23번은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콜로라도에선 17번이 23번 못지않게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등번호다. 주인공은 바로 콜로라도 로키스의 1루수 토드 헬튼(40)이다. 16일(한국시간) 헬튼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9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8번으로 로키스에 지명된 헬튼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등번호처럼 한 팀에서만 17년째 빅리거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홈경기는 26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이며, 선수생활의 피날레는 30일 LA 다저스와의 원정경기로 장식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23일 현재 타율 0.316, 368홈런, 1402타점, 1400득점, 출루율 0.414, 장타율 0.539다. 2000년부터 5년 연속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선정됐고, 골드글러브도 3차례 수상했다.

고교때 최고 쿼터백…야구에선 타율 0.655
1998년 메이저리그 풀타임 첫해 주장 맡아
2000년 타율 0.372, 147타점 ‘최고의 해’
약물 대신 성실함으로 17년간 ML 평정 귀감
30일 다저스와 원정경기 후 현역생활 은퇴


1973년 8월 20일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태어난 헬튼은 야구와 풋볼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고교 졸업반 시절 풋볼의 쿼터백으로 2772야드를 기록하는 한편 야구에선 타율 0.655, 12홈런의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스포츠 명문 테네시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3학년까지 풋볼에 주력했다. 1993년 최고의 대학풋볼선수에게 주어지는 하이즈먼 트로피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히스 슐러의 백업 쿼터백으로 2년을 보낸 헬튼은 3학년에 올라가서도 후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주전 쿼터백 제리 콜큇이 UCLA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무릎을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어 마침내 주전 쿼터백으로 발돋움했지만, 불과 3주 후 미시시피주립대학과의 경기에서 그 또한 무릎을 다쳐 실의에 빠졌다. 헬튼을 대신한 선수는 바로 NFL(미국프로풋볼) 최고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현 덴버 브롱코스)이었다. 팀의 3번째 쿼터백이었다가 선배들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매닝은 각종 기록을 수립하며 대학풋볼을 평정한 끝에 1998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신인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지명됐다.

부상에서 회복됐지만 대학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매닝에 밀린 헬튼은 야구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4학년 때는 팀의 마무리투수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47연속이닝 무실점으로 미국대학야구 기록을 수립했고, 11세이브에 방어율 0.89를 마크했다. 지금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매닝이 아니었다면, 헬튼은 메이저리그가 아닌 NFL 선수로 활약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무릎 부상을 입은 뒤에도 NFL 잭슨빌 재규어스와 휴스턴 오일러스(현 텍산스) 등으로부터 스카우트를 제의받았을 정도로 헬튼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연마하던 헬튼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로키스의 4번타자로 활약하던 안드레스 갈라라가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돼 헬튼이 1998년부터 주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헬튼은 아직 루키임에도 불구하고 주장으로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152경기에 출전해 타율(0.315), 홈런(25개), 타점(97개), 장타율(0.530) 에서 메이저리그 루키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생애 단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왕은 시카고 컵스의 우완투수 케리 우드의 차지였다. 우드는 13승6패, 방어율 3.40에 그쳤지만 단 한 경기가 신인왕의 향배를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7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단 1안타만 허용하며 무려 2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완봉승을 거뒀던 것이다. 로저 클레멘스가 보유하고 있던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과 타이였고, 1980년 빌 걸릭슨이 수립한 루키 최다 탈삼진(18개)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헬튼은 2000년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다. 타율(0.372), 타점(147개), 2루타(59개), 장타율(0.698) 등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또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지미 폭스, 행크 그린버그에 이어 5번째로 200안타, 40홈런, 100타점, 100득점, 100장타, 100볼넷을 한 시즌에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선 5위에 그쳐 상복과는 인연이 없음을 드러냈다. 이듬해에도 생애 최다인 49홈런을 터뜨리며 타율 0.336, 출루율 0.432, 장타율 0.685의 화려한 성적을 거뒀지만 새미 소사와 배리 본즈에 밀려 MVP 수상에 또 다시 실패했다.

2007년은 헬튼에게 가장 잊지 못할 시즌이다. 타율 0.320, 17홈런, 91타점을 기록한 그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실낱같은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이어가던 로키스는 9월 18일 다저스와 더블헤더를 치렀다. 2번째 경기 9회말 2사 후 타석에 등장한 그는 마지막 스트라이크 한 개를 남겨놓고 다저스 마무리 사이토 다카하시로부터 극적인 끝내기 2점홈런을 터뜨렸다. 이 경기를 포함해 정규시즌 마지막 14경기에서 13승을 챙긴 로키스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극적인 타이를 이루는 기적을 연출했다. 여세를 몰아 파드리스와의 단판 승부에서 연장 13회 혈투 끝에 9-8로 승리해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로키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3경기 만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경기 만에 제압하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4전패로 무릎을 꿇어 팀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은 뒤로 미뤄야 했다. 헬튼도 포스트시즌에서 한 개의 홈런도 치지 못한 채 타율 0.220, 2타점으로 부진했다.

헬튼은 선구안이 가장 뛰어난 타자 중 하나다. 17년 경력에서 볼넷이 삼진보다 많은 경우가 10시즌이나 됐다. 23일 현재 통산 볼넷은 1334개로 삼진(1168개)을 능가한다.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은 “경기 막판 접전이 펼쳐질 때 헬튼이 타석에 들어서는 게 정말 싫다. 자신이 좋아하는 볼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 커트해낸 뒤 기어코 홈런이나 2루타를 때리기 때문이다”며 혀를 내둘렀다.

ESPN과의 인터뷰에서 헬튼은 “만약 내년 시즌 홈에서 81경기만 뛸 수 있다면 은퇴를 다시 생각해볼 것”이라며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 앞으로 시즌을 마치고 내년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약물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늘 성실한 모습으로 메이저리그를 17년 동안이나 평정했던 헬튼의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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