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감싸 안은 홍명보 감독, 진심에 골로 화답한 박주영

입력 2014-03-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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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박주영(오른쪽). 스포츠동아DB

아름다운 사제간 인연이 만든 그리스전 결승골
광저우·런던 이어 브라질서도 영광 재현 기대


대표팀 홍명보(45) 감독의 신뢰에 박주영(29·왓포드)이 또 한 번 화답했다. 박주영은 6일(한국시간) 그리스와 평가전에 선발 출전해 그림 같은 왼발 선제 결승골로 2-0 승리를 이끌었다. 단순히 공격수가 1골 넣은 차원이 아니다. 홍 감독은 “소속 팀 경기에 뛰는 것이 대표선수 선발의 기준이다”는 원칙을 접고 박주영을 뽑았다. 박주영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안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결론은 홍 감독이 옳았다. 박주영이 왜 대표팀에 필요한지 입증됐다.


● 홍(洪)과 박(朴)의 인연

홍명보와 박주영. 심상치 않은 인연이다.

홍 감독이 2006독일월드컵 코치, 2008베이징올림픽 수석코치 때 박주영이 선수였다. 둘이 본격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은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이었다. 아시안게임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3명의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중 1장으로 박주영을 낙점했다. 2년 후 런던올림픽을 내다봤다. 홍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박주영의 또 다른 모습을 봤다. 아시안게임은 병역혜택(금메달)이 걸려 있다. 유럽에서 오래 뛰려는 박주영에게 병역혜택은 절실했다. 아시안게임은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대회가 아니어서 당시 박주영 소속 팀 AS모나코는 차출을 거부했다. 그러자 박주영은 자신이 직접 구단과 담판 지어 허락을 받았다. 박주영이 병역혜택을 위해 아시안게임 출전을 강행했다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병역 이상으로 진심을 보였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일격을 당했다. 병역혜택은 날아갔다. 그러나 박주영은 끝까지 팀에 남아 3,4위전을 뛰었다. 투혼의 플레이로 동생들을 독려했고, 극적 역전승을 이끌었다.

홍 감독과 박주영은 경기 후 포옹하며 진한 눈물을 쏟았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눈물을 진심이라 믿었고 지금도 진심이라 믿는다.

2012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당연히 박주영이 와일드카드 1순위였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터졌다.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얻은 장기체류자격을 이용해 병역을 사실상 면제 받았다. 불법은 아니지만 교묘한 편법이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대표팀 최강희 감독도 박주영을 쉽게 A대표팀에 못 뽑았다.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기자회견 때 박주영에게 대국민 사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하게 해 여론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하지만 박주영이 끝까지 거부했다. 철옹성 같던 박주영의 마음을 홍 감독이 열었다. 홍 감독은 박주영을 데리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박주영은 “유럽에서 축구를 계속 하고 싶어 그랬다. 병역은 꼭 이행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주영은 결국 런던올림픽에 갔고, 일본과 3,4위전에서 상대 수비수 4명을 농락하는 화려한 플레이로 결승골을 작렬했다. 한국은 동메달을 땄고, 박주영은 병역을 면제 받았다.

홍 감독은 작년 6월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평소라면 박주영을 뽑는 게 문제될 게 없다. 자타공인 한국 최고 공격수다. 그러나 소속 팀에서 벤치만 지켰고, 이것이 홍 감독의 원칙과 얽혔다. 홍 감독은 이번에도 박주영을 뽑기 위해 여론을 살펴야하는 처지가 됐다. 돌이켜 보면 늘 그랬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런던올림픽 모두 박주영을 편하게 부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박주영을 뽑으려 하느냐.”

런던올림픽을 앞둔 시점 홍 감독의 답변이면 대답이 될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우리 팀에 박주영이 필요한데 축구 외적인 이유(병역면제)로 안 뽑았다가 나중에 실패하고 나서 ‘그 때 박주영을 뽑을 걸’이라는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

이번 대표팀 발탁도 같은 맥락이라 본다. 홍 감독이 사적으로 박주영과 자주 연락한다든지 특별히 가깝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홍 감독 판단에 박주영은 대표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격수고 또 팀원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선수다. 다시 말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홍 감독과 박주영은 아시안게임에서 감동적인 동메달을 따냈고, 그 눈물을 발판 삼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합작했다. 아시안게임으로부터 4년, 올림픽으로부터 2년이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둘은 또 다른 스토리를 준비 중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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