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6년 연속 KS 진출…비룡이여, 그 순간을 잊지마라!

입력 2014-03-2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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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가 세대교체를 위한 대대적인 투자와 김광현, 최정 등의 스타 선수들을 앞세워 올 시즌 재도약을 자신하고 있다. SK가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프로야구단의 뿌리를 찾아서

비룡왕조의 부활 나선다
4. SK 와이번스

2000년 뉴밀레니엄과 함께 태동
조범현 감독, 첫 KS 진출 이끌어
2007년 김성근 감독 사령탑 선임
KS 2연속 우승 등 비룡왕조 시작
6연속 KS 진출 이듬해 6위 추락


SK는 뉴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태동했다. 2000년 3월 20일 창단을 공식발표한 SK는 강병철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안용태 창단준비팀장을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어 3월 2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의 창단 승인, 3월 23일 보상선수 7명(강병규 권명철 송재익 김충민 장광호 김종헌 김태석) 지명, 3월 31일 창단식을 거치며 시즌 개막을 맞았다. 4월 5일 역사적인 첫 1군 경기에서 삼성에 3-2로 승리하며 휘파람을 불기도 했지만, 창단팀의 1군 안착은 쉽지만은 않았다.

프로야구단 SK는 2000년 3월 31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힘차게 닻을 올렸다. 당시 창단식 모습. 스포츠동아DB



● 이승호, 창단 첫 해 신인왕

쌍방울을 인수한 이후 재창단한 SK는 객관적 전력에서 타구단에 비해 열세였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이후 자금난에 허덕였던 쌍방울은 박경완, 조규제, 김기태, 김현욱 등 투타의 주축들을 타팀에 넘겼다. SK가 보상선수만으로 전력을 강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SK는 2000년 44승3무86패(0.338)의 성적으로 8개 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희망도 있었다. 쌍방울의 지명권을 양수받아 SK에서 데뷔한 이승호(33·NC)는 10승 12패9세이브를 거두며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결국 신인왕은 이승호의 차지였다.


● 신생구단의 초석 다지기

SK가 초석을 다지는 데 ‘열혈남아’ 안용태 대표이사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안 대표는 KBO 이사진을 압박해 2002년 신인 2차 지명 때 3명을 우선지명하고, 한국시리즈(KS) 우승 팀에서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준우승팀에서 21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결과 제춘모와 윤길현 등을 지명했고, 조규제와 조웅천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2001년 12월에는 삼성과의 6대2 트레이드를 통해 김기태, 김동수, 정경배, 이용훈, 김상진, 김태한을 데려왔다. 결국 SK는 2001년 7위, 2002년 6위로 차츰 성적을 끌어올렸다. 특히 채병용(7승9패11세이브), 제춘모(9승7패) 등 샛별들은 2002년 데뷔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두며 돌풍을 예고했다.


● 2003년 창단 첫 KS 진출

2003년은 SK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해였다. 그 시작은 파격적인 사령탑 인선이었다. SK는 2002년 12월 최고의 배터리코치로 평가받던 조범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SK 관계자는 “초보 감독이긴 하지만, 분석적이고 세밀한 야구를 펼칠 수 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회상했다. SK는 조 감독 선임에 이어 박경완을 FA(프리에이전트)로 영입하며 안방전력을 강화했다. 조 감독의 데이터 야구는 부임 첫 해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페넌트레이스 4위로 가을잔치에 진출해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삼성, PO에서 KIA를 따돌리며 KS에 올랐다. 포스트시즌(PS)과 KS 진출 모두 창단 이후 처음이었다. SK는 현대와의 KS에서 접전 끝에 3승4패로 졌지만, ‘아름다운 패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조 감독은 2005년에도 팀을 PS로 이끌었다.


● 2007년 비룡왕조의 시작

SK는 2007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SK 왕조의 시작점이었다. 김 감독은 특유의 선수단 장악능력과 치밀한 수싸움으로 2007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정근우, 박재상, 김강민, 최정 등 전임 감독 시절부터 가능성을 보였던 재목들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한 SK는 두산과의 KS에서 KS 사상 최초로 2패 뒤 4연승을 거두며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2008년에도 인천발 태풍은 그 위력을 더해갔다. 2007년 입단한 김광현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우뚝 서며 다승왕(16승)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거머쥐었고, SK는 KS 2연패의 위업을 쌓았다. 비록 2011년 8월 중도퇴진했지만, 김 감독은 2009년 준우승, 2010년 우승을 기록하며 재임기간 동안 SK를 최강팀으로 도약시켰다.


● 스포테인먼트로 흥행도 성공

SK 신영철 전임 대표이사가 표방한 스포테인먼트는 팀 성적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관중동원력을 높였다. 2004년 약 34만명 수준이던 SK의 홈관중은 2012년 약 107만명까지 증가했다.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으로는 사상 첫 100만 관중 돌파였다.


● 2014년 비룡왕조 재건하나?

이만수 감독은 2011시즌 도중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전임 감독의 중도퇴진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팀을 KS에 진출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2시즌에는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사령탑이 됐다. SK는 2012시즌에도 KS에 오르며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6년 연속 KS 진출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2013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6위에 그쳤다. SK는 ‘왕조 부활’이라는 과제를 안고 2014년의 출발선상에 섰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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