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베이스볼] 9회말 2사 만루 긴박한 상황서 A급, B급 선수 갈린다

입력 2014-04-1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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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나 투수나 만루에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임하는 자가 우위를 점한다. 두산 투수 유희관(오른쪽)은 그런 멘탈에서 으뜸에 속한다. 스포츠동아DB

■ 투수와 타자가 만루에 대처하는 자세

타자들 무사 만루보다 2사 만루서 타율 하락
‘앞 타자가 끝내겠지’ 하다 심리적으로 쫓겨
“현역 땐 1루주자까지 불러오겠다는 생각도”
김기태 감독, 타석서 긍정적인 마인드 강조

투수들은 ‘1점도 안 주겠다’는 생각은 금물
이용찬, 볼카운트 몰려도 끝까지 직구 승부
봉중근도 삼진-땅볼-땅볼…무사 만루 돌파
자기 공 믿고 여유 갖고 던져야 ‘A급 마무리’


9회말 2사 만루. 타석에 선 타자와 마운드에 선 투수, 두 남자 모두 더 이상 물러설 여지가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피할 수 없는 지점에서 승리와 패배를 걸고, 정면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만루는 짜릿하다. 공 1개의 결과에 따라 흐름 전체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절박하긴 투수와 타자 매한가지다. 그러나 대다수 야구인들은 “만루는 투수에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단정한다. 공을 자기가 ‘마음먹은 곳에 무조건적으로 꽂아 넣어야 된다’는 압박감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프로야구에서 이 만루 상황을 놓고 두 가지 장면이 빚어졌다. 잠실에서 두산 마무리 이용찬은 2-1로 앞선 9회초 마무리로 나서 2사 만루 풀카운트로 몰렸다. 공 1개만 실수하면 최소 동점이 될 위기에서 이용찬은 직구만 4개를 던져 3차례의 파울 끝에 SK 조동화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고 승리를 지켜냈다. 또 사직 롯데전에서 LG 마무리 봉중근은 2-2로 맞섰던 10회말 무사만루 끝내기 패배 위기를 벗어났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조건에서 투수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근본적 승리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만루에서 이기는 심리학을 모색해봤다.


● 타자, 타석에 들어서기 전 마음가짐에서 갈린다

MBC스포츠+ 박재홍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만루에 강했던 선수로 유명하다. 만루홈런만 무려 11개로 심정수(12개)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있다. 박 위원이 타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만루에 몰리면 투수는 밀어내기 볼넷을 염두에 두게 된다. 심리적으로 위축 되니까 아무리 컨트롤이 좋은 투수라도 미세한 지점에서 흔들릴 수 있다.” 쉽게 말해 만루란 특수상황에서 투수의 핀 포인트 컨트롤이 흔들리기 때문에 타자가 공을 치기 편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박 위원이 강조한 만루 시 타자의 마음가짐 첫 번째는 자신감, 즉 긍정적 생각이다.

여기 더불어 또 하나의 성공비결은 ‘대기타석에서의 준비 자세’다. 야구에서는 ‘무사만루에서 의외로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것이 심리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 박 위원은 “무사 만루가 되면 대기 타석의 타자 둘은 ‘앞 타자가 끝내겠지’라는 기대감을 갖지 않기가 어렵다. 타자는 대기 타석에서 어떤 볼 카운트에서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되는데 그런 기대감이 은연 중 생기면 ‘설마 나한테 긴박한 타석이 돌아올까?’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 앞 타자가 막히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서기에 심리적으로 더 쫓긴다”고 말한다. 무사 만루에서 1사 만루, 다시 2사 만루 상황이 나빠질수록 오히려 타자가 받는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고 무득점이란 최악의 결과가 빚어지는 셈이다.

한편으로 수비 측은 만루에서 수비하기가 편한 이점이 발생한다. 태그 플레이가 필요 없어지니까 내야 땅볼만 나오면 홈에 던질 수 있다. 롯데가 8일 거듭된 만루 찬스에서 1점도 얻지 못한 것은 결국 심리전에서 자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또 하나의 ‘만루 사나이’였던 LG 김기태 감독(만루홈런 9개, 역대 4위)의 경험담은 음미할 만하다. “만루에서 부정적 생각은 절대 안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고, 1루주자까지 불러오겠다는 생각으로 타격했다. 스트라이크존을 좁혀놓고 나의 공을 기다렸다.”



● 투수, 만루를 이기려면 자기 공을 믿어라

만루에서 투수가 지녀야 할 마인드의 대원칙은 ‘최소실점’이다. ‘1점도 안 주겠다’가 아니라 ‘줄 점수는 주겠다’는 느긋함이 필요하다. MBC스포츠+ 양상문 해설위원은 “만루라는 역경에서 A급과 B급이 갈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기에 처해서도 흔들림 없이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야 A급이라는 것이다.

만루에서, 특히 볼 카운트가 몰릴수록 투수는 자기의 장점으로 승부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용찬이 8일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직구로만 승부를 건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했다. 투수 역시 긍정적 자신감이 만루 위기를 돌파하는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8일 이용찬과 봉중근의 투구내용을 복기하며 ‘두 투수가 어째서 일급 마무리인지’를 설명했다.

“SK 타자들은 이용찬의 포크볼에 속지 않았다. 2사 만루에서 볼카운트가 3B-1S까지 몰렸다. 직구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점수가 2-1인 상황에서 볼 1개만 더 던지면 동점으로 블론세이브였고, 흐름이 SK로 넘어가는 위기였다. 타자 조동화는 당연히 직구만 노리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이용찬은 직구로 풀카운트를 만들었다. 이어 3번의 파울이 나오는 동안 모조리 직구만 던졌다. 그리고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5번째 공도 직구였다. 공 5개를 연속 직구만 던져 위기를 돌파했다.” 이 위원은 이 장면에서 이용찬이 5개의 직구를 던진 것도 대단하지만 그 공을 전부 스트라이크존에 넣은 것도 높이 평가했다. “이용찬이 마무리 멘탈의 소유자라는 것을 입증했다. 또 직구에 힘이 있음을 보여줬으니 마무리로서 자신감을 얻은 경기”라고 덧붙였다.

무사 만루를 돌파한 봉중근에 대해선 “마무리의 요건인 강한 심장, 탈삼진 능력, 내야 땅볼 유도능력을 모두 보여준 경기”라고 평가했다. 무사 만루에서 강민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조금 조건이 좋아진 1사 만루에서 다음 타자를 내야 땅볼 유도해 홈에서 잡았다. 여기서 결정구가 커브였다. 이어 2사 만루에서 몸쪽 직구를 결정구로 던져 힘으로 막았다. 자신감과 집중력에서 봉중근이 롯데 타선을 압도한 결과다. 이 위원은 “낮게 떨어지는 공을 던지면 포수가 내 공을 빠뜨릴 것이란 생각 같은 것은 만루에서 떨쳐야 된다. 긍정적 생각으로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만루란 조건은 동일하다. 누가 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역경에 응전하느냐가 승리의 열쇠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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