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녀괴담’ 강하늘 “화려한 주연보다 좋은 필모그래피 쌓는 게 우선”

입력 2014-06-27 1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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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니까 생각나는데, 우산을 8~9년간 안 썼어요. 집에 우산도 없어요. 비 맞는 걸 좋아하거든요. 비 오는 날, 비를 맞아도 상관없는 옷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바깥에 나가곤 해요. 저는 빗소리에 깰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새벽에 비 오면 맨발로 동네를 다녀요. 그래서 별명도 생겼어요. ‘살인의 추억’이라고. 하하하.”

23일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아쉽게 알제리에 패한 날, 배우 강하늘(24)을 만났다. 이날 강하늘 역시 새벽부터 추적추적 비가 오는 광화문에 나가 붉은 악마들과 함께 응원했다. 밤을 새 피곤했을 법도 한데 그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알제리에 져 어떡하나”며 아쉬워하다 자연스레 스포츠 이야기로 빠졌다. 구기종목에 소질이 없다는 강하늘은 최근 무예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작품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몸을 많이 쓰는 운동이라 힘들지만 평소 해보고 싶었어요. 몸도 건강해지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좋아요. 저는 같이 하는 운동엔 영 소질이 없더라고요. 아 근데 저 따돌림 당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웃음) 혼자서 운동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게 제게 운동이자 휴식이에요.

강하늘은 올 여름 공포물에 도전했다. 올해 한국영화로는 유일한 공포물 ‘소녀괴담’ (감독 오인천)에서 어렸을 적부터 귀신이 보여 따돌림을 당했던 소년 인수 역이다. ‘컨저링’이나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같은 공포물을 좋아했던 강하늘은 ‘소녀괴담’이 색다른 공포물로 다가왔다.

“공포영화를 생각하면 상투적인 것들이 생각나잖아요. ‘소녀괴담’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늑대소년’, ‘렛미인(Let Me In)’이 생각났어요. 다음날 감독님을 만나 이 이야기를 하니 ‘정확히 짚었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드라마를 중점으로 하는 공포물이라고 하셨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존 공포물과는 다른 느낌, 즉 ‘감성공포’를 지향하는 것 같아 참여하기로 결정했죠.”

강하늘의 말대로 ‘소녀괴담’은 기존 공포물과는 다르게 십대 청춘들의 풋풋한 로맨스가 있다. 첫사랑이 생각나게 하는 청순한 소녀귀신(김소은)과 한 소년의 사랑이야기도 볼 수 있고 거칠지만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를 외치는 해철(박두식)의 깡다구도 멋지다. 하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속 담겨진 메시지다. 최근 심각해진 학교 폭력 사태를 다루며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방관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 하지만 그는 “우리 영화가 계몽영화는 아닌 것 같다. 단지 사람들을 돌이켜보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찍으면서 학창시절을 돌아보게 됐다. 나도 방관자였던 것 같다”고 답했다.


“저는 학창 시절을 원 없이 즐겼어요. 열심히 놀아보기도 했고, 열심히 공부도 했어요. 일명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기도 하고. 저 같은 애들과도 놀기도 하고요. 허울 없이 친구들과 잘 지냈어요. 야자(야간자율학습) 땡땡이도 쳐보고 다음 날 선생님한테 된통 혼나기도 했죠. 머리길이가 길어 선생님께 머리카락을 잘려보기도 했어요. 또 진짜 열심히 독하게 공부하던 때도 있었죠. 이것저것 다 해봐서 후회가 없어요.”

기자가 처음 강하늘을 본 건 뮤지컬 ‘어쌔신’무대에서였다. 베레모를 쓰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오스왈드’와 ‘발라디어’를 소화해낸 그의 모습에 감탄했다. 이 말을 하자 그는 “아 그러세요?”라고 화색이 돌더니 연기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하늘의 연기 생활은 필연 또는 우연으로 시작됐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연극을 보러다니며 ’연기’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직접적으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길을 걷다 어떤 교회 성극단이 붙여놓은 ‘모집공고’ 광고지를 보게 됐고 재미있을 거란 생각에 참가하게 됐다. 비록 종교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 당시 소품 팀이었던 강하늘은 공연을 무사히 올리고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기쁨도, 슬픔도 아닌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차마 지워지지 않아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기로 했다.

“연극동아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처음엔 연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미술팀, 소품팀 등 제작진 쪽에 관심이 컸는데 우연히 배역이 하나 비여서 연기를 하게 됐어요. 막상 무대에 나가 연기를 해보니 ‘연기가 연극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점점 재미를 붙여나가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기가 좋아 일반고에서 국립 전통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현재는 휴학 중이다. “연기를 하면 스스로 살아 숨쉴 것 같았다”는 강하늘은 요즘 연기 때문에 죽을 맛이다. 하면 할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탓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연기’에 답은 없지만 우리는 관객에게 마치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돼요. 그만큼 연구도 하고 고민도 하니까 마냥 즐겁진 않아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서고, 카메라 앵글 앞에 서는 것은 행복하지만 연기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답답해요. 가장 싫은 순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연기를 마치고 나면 다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연기는 저와 애증의 관계죠.”

강하늘과 연기의 투덕거림은 올해도 계속된다. 작년 SBS 드라마 ‘상속자들’, 올해 ‘엔젤아이즈’, 영화 ‘소녀괴담’, ‘쎄시봉’, ‘순수의 시대’, ‘스물’까지 강하늘은 젊은 열정이라도 자랑하듯 열심히 뛰고 또 뛴다. ‘쎄시봉’ 서 윤형주 역을 맡은 그는 아르페지오(기타 연주법)을 위해 오른쪽 손톱을 열심히 길렀다. 기타를 치다 손톱이 부러졌지만 “어쩔 수 없죠, 뭐”라며 빙긋 웃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올해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다 하고 있어요.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누군가 저를 좋게 봐주신다는 거니까 늘 감사하죠. 그 기분을 넘어서 저는 제 필모그래피가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지나 누군가가 ‘강하늘’이라는 인물을 찾아봤을 때, ‘이 사람이 좋은 작품을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하는 거죠. 주연을 많이 했다는 소리보다 훌륭한 작품에 참여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저 역시 관객들이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는 작품을 잘 골라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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