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닝 투혼, 잘하면 본전 못하면 역적” 중간계투의 비애

입력 2014-07-0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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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만. 스포츠동아DB

“3∼4경기 잘하다가 1경기 못하면 방어율 급등
하루 3∼4차례 몸만 풀다가 집에 갈땐 허무해”

선발투수처럼 돋보이지 않는다. 마무리투수처럼 노고를 인정받지도 못 한다. 그러나 팀 마운드에서 없어서 안 될 존재가 바로 불펜투수들이다. 한국프로야구의 역대 최고 마무리로 꼽히는 오승환(32·한신)도 항상 “내가 세이브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안)지만이를 비롯한 중간계투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러나 불펜투수들의 평가기준인 ‘홀드’라는 기록이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요즘 같은 타고투저 시대에 중간계투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주어진 1이닝을 잘 막으면 ‘본전’이지만 1점이라도 주면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던지는 이닝이 적기 때문에 실점 한 번이면 방어율도 무섭게 치솟는다. A구단의 한 좌완투수는 “3∼4경기를 쭉 잘 던져도 1경기에서 2실점하면 방어율이 쭉 올라간다”며 “방어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게 불펜투수인데 구단을 비롯해 사람들은 숫자만 보고 그 투수를 평가한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간계투들의 고충은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선발은 5일에 한 번, 마무리는 세이브 상황이나 팀이 이기고 있을 때 등판을 준비하지만 중간계투는 매일, 급변하는 경기 내용에 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필승조와 추격조가 나뉘어있는 팀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렇지 않은 팀은 언제 등판할지 모른 채 몸만 풀어야할 때가 대부분이다.

B구단의 한 우완투수는 “그나마 경기에 나가면 괜찮다. 그런데 하루에 불펜에서 3∼4번 몸만 풀고 집에 갈 때는 허무하다”며 “보통 한 번에 20개 정도 공을 던지는데 경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공 하나도 허투루 던질 수 없다. 3번 정도 몸을 풀면 60개는 던지는 것 같다. 그런 날은 힘들어서 경기에 나가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B구단 마무리투수는 “솔직히 나는 언제 등판할지 경기를 보면서 알 수 있으니까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중간계투들은 정말 고생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불펜에서 6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면 경기에 못 나가게 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기준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중간계투라는 보직 특성상 주어진 이닝에 점수를 주지 말아야하고, 타고투저 시대에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고충이 많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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