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영화사는 동시기 혹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가 상영관 점유율에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이런 변칙개봉은 용납할 수 없다고 일제히 분노하기 시작했다. ‘혹성탈출2’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시기를 앞당긴다면, 이미 간판을 붙인 영화들과 개봉을 앞둔 영화들이 차지할 상영관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공평하게 상영관을 나눠주면 안 되냐고? 엄격한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이 시장에서 ‘혹성탈출2’과 같이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영화와의 경쟁은 쉽지 않다. 결국 화려한 마케팅 전략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영화의 예매율로 극장 역시 관을 내줄 수밖에 없다. 결국 이것도 일종의 ‘장사’라는 것이다.
● “갑작스런 개봉일 변경, 지저분한 노림수”
이러한 ‘변칙개봉’으로 가장 피해를 보게 된 동시기 개봉 영화사는 분노 혹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0일 개봉하는 국내 영화 ‘좋은 친구들’ 제작사 측은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경쟁작이 개봉시기를 변경했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법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지 않나. 단지 배급사가 다른 영화사를 좀 더 배려했으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울 뿐이다”고 아쉬운 심경을 드러냈다.
‘좋은 친구들’과 같은 날 개봉하는 ‘사보타지’ 배급을 맡은 메인타이틀픽쳐스의 이창언 대표는 성명서를 내며 20세기폭스코리아를 비난했다. 그는 “10일로 개봉을 확정한 다수의 영화사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며 “거대 자본의 논리로 중소 영화사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러한 변칙 개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며 20세기폭스코리아에 원래 개봉일이었던 16일에 개봉하라고 요구했다.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도 이 대표는 “원래 국내외 영화의 개봉은 1년 전부터 라인업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개봉일을 변경하는 것은 우리들의 ‘규칙’을 명백히 어긴 것”이라며 “전주 개봉한 영화의 흥행여부를 보며 갑자기 끼어드는 것은 지저분한 노림수로 보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점점 커지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개봉계획을 급작스럽게 변칙적으로 변경할 경우, 배급계획에 대한 심각한 혼란과 막대한 경제손실을 입게 된다. 이것은 내가 먼저 살고 남을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며 “배급사 이십세기폭스 코리아는 기존 배급질서에 반하는 변칙적 개봉을 즉각 철회하고 건강한 영화유통시장 환경 조성에 앞장서 주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측은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이미 조금씩 자행돼왔던 변칙개봉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히 한 영화를 노린 것이 아니다. 상처가 곪아 더 터지기 전에 나서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우린 억울하다”
이에 대해 ‘혹성탈출2’의 배급사인 20세기폭스코리아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봉계획 변경으로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눈치였다. 20세기폭스코리아는 동아닷컴에 “원래 개봉일을 10일과 16일 중 선택하려고 했다. ‘혹성탈출’ CG 작업이 늦어져 예고편과 TV스팟 등이 늦게 공개됐고 성수기인 여름에 심의가 늦게 나올까 개봉일을 16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라며 “하지만 심의가 빨리 진행됐고 미국 본사에서 전 세계 동시 개봉을 진행하자고 했다. 우리 역시 불법다운로드 파일 유출의 위험이 있기에 빨리 개봉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개봉일을 10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배급사 측은 “변칙개봉은 이미 국내영화계에서 자행돼왔던 일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변칙개봉을 해서 논란이 됐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후 전야개봉 등 수많은 영화가 자잘하게 변칙개봉을 해 왔다. 그런데 단지 ‘혹성탈출2’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이유로 몰아세우는 것은 억울하다”고 밝혔다.
● ‘변칙개봉’ 논란, 왜 미리 예방하지 못 했나
양측의 엇갈린 주장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봐야할까. 사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혹성탈출2’가 굳이 불법유출의 위험을 안고서 개봉일을 늦출 이유도 없지만 이미 일 년의 영화 개봉 라인업이 짜여 있는 가운데 불법유출 때문에 우리 먼저 개봉하겠다는 식의 배려 없는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온전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그들의 개봉시기를 당기는 것이 순수한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랜스포머4’가 예상보다 흥행이 잘 되지 않고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펴는 이 시점에서 굳이 개봉시기를 당겨야 했는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왜 미리 예방하지 못 했냐는 것이다. 만약 처음 변칙개봉이 일어났을 때부터 강력하게 대응했고 강력한 규제가 있었다면 지금 이러한 사태가 일어났을 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라도 ‘변칙개봉’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