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 이숙자 “올림픽 경기 뛰는 것보다 방송이 더 긴장돼요”

입력 2014-07-1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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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의 현역생활을 마친 이숙자 위원이 해설가로 데뷔한다. 이 위원은 유니폼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평소에도 세련된 스타일을 자랑하는 패셔니스타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배구 해설자 변신 이숙자

23년간 선수생활 “챔피언으로 은퇴 홀가분”
19일 여자부 개막전 방송해설자 데뷔 앞둬
일주일에 이틀씩 경기 화면 보며 해설 연습
자료조사에 선수신상명세 외울 정도로 연구

긴장과 설렘. 수많은 경기를 앞두고 이런 느낌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긴장이다. 스포츠채널 KBSN의 새 해설위원 이숙자(34). 아직은 이숙자 선수로 익숙한 그가 현역은퇴 뒤 해설자로 변신했다. 19일 경기도 안산에서 벌어지는 2014 우리카드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개막전(IBK기업은행-GS칼텍스)이 방송 데뷔전이다.

“걱정이 앞서 꿈도 꾼다. 방송 사고를 내는 꿈이다. 잘해보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새로운 도전이라 고민이 많다. 박미희 선배를 찾아가 해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은퇴경기였던 2013∼2014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23년간 입었던 유니폼을 벗은 이숙자 위원은 이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뛴다.


-모든 선수들의 꿈이 우승하고 은퇴하는 것이다. 흔치 않은 꿈을 이뤘는데.

“홀가분하다. 깨끗하게 마무리한 느낌이다. 부상 때문에 많이 뛰진 못했어도 역시 우승은 기쁘다. 2년 전 준우승을 하고 은퇴하려고 했다. 숙소에서 짐도 뺐는데 이선구 감독이 만류했다. 속으로는 그래도 은퇴한다고 했다. 이 감독이 ‘정 그렇다면 계약이 6월까지니까 그때까지 천천히 생각해본 다음에 결정하자’고 만류했다. 만일 그때 그만뒀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23년간 했던 배구를 우승으로 마무리해서 홀가분하다. 배구선배 언니들이나 친구들이 모두 ‘축하 한다’ ‘복 받았다’고 했다.”


-V리그에서 2번 우승했는데 어떤 우승이 더 기뻤나?

“첫 우승(2009∼2010시즌)이 더 기뻤다. FA선수로 팀을 옮긴 뒤 처음 시즌이라 기쁨이 컸다. FA제도 첫해라 팀을 옮긴 선수는 배신자 취급받던 때라 부담이 컸다. 이번 우승도 4차전에 지는 줄 알았다가 내가 도중에 들어가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역전해서 기뻤다. 솔직히 지는 줄 알았다. 역시 우승은 좋다.”


-23년 배구생활, 정말 길게 했다. 어떻게 배구를 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였다. 배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남매 가운데 한 명은 운동을 시키려고 했다. 오빠가 먼저 축구를 했는데 몸이 약해 그만뒀다. 아버지와 아는 분이 배구 감독을 했는데 ‘딸 있으면 내게 보내라’는 얘기에 이천에서 평택으로 전학 가서 선수를 시작했다. 그때 키가 150cm였다. 시골에서는 제법 컸지만 배구 팀에 갔더니 내가 가장 작았다. 그때부터 세터를 했다. 1998년 고3때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자유계약 제도였는데 IMF사태(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가 터지기 한 달 전에 계약해 계약금도 꽤 받았다. 주전으로 뛰기로 했는데 IMF로 해체된 SK에서 강혜미 장소연 선배가 왔다. 그때부터 6년간 벤치만 지켰다. 힘들어 배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지금 나가면 위약금을 3배 물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참고 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오래 배구를 했다. 몸이 약해서 그때 주전을 했더라면 프로를 경험하지도 못한 채 선수생활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벤치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좌절한 것도,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알았다. 주전으로도 뛰어봤고 비주전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봐서 선수들의 중재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한 시즌에 몇 번 없는 출전 기회에서 토스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경기 뒤 장소연 선배가 해준 말이 큰 도움이 됐다. ‘모처럼 네가 들어왔는데 점수로 연결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먼저 말했다. 그 한마디가 위안이 되고 고마웠다. 말 한마디가 상처를 주고 위로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선수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느낌은.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그동안 계속 숙소에서만 지냈고 어디를 가도 선수들과 함께였다. 선수단 버스로 움직이다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를 어떻게 쓰는지 잘 몰라서 최근에 남편에게 물어봤다. 지금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팀에서는 세터코치를 제의했는데 해설자를 선택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코치를 하면 팀에서 배려를 해주겠지만 선수들과 같이 움직여 생활패턴이 같아질 것 같았다. 2세도 가져야하는 나이다. 그러던 차에 제의가 왔다.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을 준비했는데 힘들다. 일주일에 이틀씩 방송사에 가서 경기 화면을 보며 해설연습을 한다. 아직 서툴러서 걱정이 많이 된다.”


-오랫동안 배구를 해왔는데 해설이 그렇게 어려운가.

“세터만 계속해 와서 공격수나 수비수의 마음을 정확히 모르겠다. 몸으로는 되는데 말이 안 나와 고민이다. 올바른 말을 써야하고 상황을 항상 설명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국어책을 읽는 느낌이다. 가끔은 사투리도 나온다. 집에서 혼자 연습 한다. 남편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 경기 때보다 훨씬 더 방송이 긴장된다.”


-얼마 전까지 선수를 했고 친한 후배들도 많아서 편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많이 알아서 편하지만 장점이자 단점이다. 정대영은 ‘보겠어 잘 하는지’라고 했고 어느 후배는 ‘언니 믿어요. 저 욕하지 마세요’ 라고 했다. 가끔 ‘∼선수’라고 하지 않고 이름이나 별명이 먼저 나온다. 후배들은 내 선택을 흥미 있게 바라본다. 자료조사를 많이 하고 있다. 선수들 신상명세를 전보다 훨씬 더 깊게 봐서 외울 정도다. 남편은 ‘지금처럼 연구했으면 선수생활 훨씬 더 잘했을 것’이라고 놀려댄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했다. 가장 기억나는 경기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4강을 확정한 이탈리아전하고, 첫 우승을 했던 2009∼2010 챔피언결정전 그리고 지난 시즌 챔프전 4차전이다. 앞의 두 경기는 당시 내가 뭘 했는지 세세히 기억이 나지만 지난시즌 챔프전은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정신없이 했다.”


-이제 선수생활을 마치면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선수가 경기에서 보여주는 순간은 짧지만 그 경기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길고 땀도 많이 흘려야 한다. 배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너무 한 곳만 파고들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한다. 배구를 마치고 해야 할 인생도 길다. 사실 나도 그 준비를 틈틈이 못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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