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군도’ 윤종빈 감독 “작품이란 인연, 첫 눈에 반한 연인 같다”

입력 2014-07-31 0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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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인연이 있어야 작품을 만난다고 한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약 10000원을 지불하고 보는 영화 한 편은 감독의 영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영감은 몇 년의 시간을 거쳐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게 되고 더 많은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는다. 모든 것이 감독과 영감의 만남이 있어야 가능하다.

윤종빈 감독과 ‘군도 :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의 만남은 길거리에서 마주친 인연과도 같았다. ‘군도’라는 소재를 생각하고 주인공 캐릭터를 구상하던 중 10년 전 하정우가 연극 ‘오셀로’에서 머리를 빡빡 깎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순간적이었다. 그 느낌이 좋아 민머리인 돌무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윤 감독은 “만약 내가 하정우의 ‘오셀로’를 보지 않았다면 돌무치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 얻어걸린 거죠. 그렇게 돌무치 캐릭터를 만들고 나니 그가 왜 민머리가 됐는지 이유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악역 조윤을 생각하게 됐고 강동원 씨가 하게 되면 더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프로듀서인 한재덕 PD가 말 타는 장면을 넣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극의 초반과 후반에 말 달리는 장면을 넣었죠. 그렇게 하나씩 세세함을 더했고 지금의 ‘군도’가 탄생하게 된 거예요.”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윤 감독의 ‘군도’는 억압에 맞서 떨쳐 일어서는 민초들의 진지한 이야기부터 캐릭터들의 생생한 성격과 활약상을 더불어 액션 활극의 통쾌함을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쾌감과 재미를 주고 있다. 특히 18살의 소년의 어리바리한 순수함부터 쌍칼을 휘두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하정우 연기부터 극 중 드문드문 나오는 내레이션까지 재치를 더하며 웃음을 더하고 있다.

“웃기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본능 같아요. 제가 코미디를 좋아하고 현장에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기니까 넣어보는 거죠. 그렇다고 억지스러운 상황을 꾸미진 않았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유발되는 웃음 코드를 심어놓았죠. 내레이션도 호불호가 가려질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설명할 부분도 있고 상영시간을 효율적으로 단축하려면 그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내레이션을 넣어버렸어요.”

조선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인 군도(群盜), 지리사 추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역사적 고증도 뒤따랐다. 윤 감독은 조선 후기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세세하게 이야기에 힘을 더 했다. 의상, 장소, 심지어 반찬까지 조선시대의 의식주를 완벽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백성들은 최대한 궁핍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백정은 집성촌이 있는데 다른 백성들과는 동 떨어진 외곽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소외된 최하층 계급인 돌무치의 집은 삭막하게 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거 아세요? 조선시대 때 있던 산은 모두 민둥산이었대요. 최근에야 푸르른 강산이 된 거죠. 게다가 그 당시에는 김치 등 고춧가루 음식이 없어서 반찬을 생으로 먹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돌무치가 생파를 그렇게 야생적으로 우걱우걱 씹었던 겁니다. 하하.”


‘군도’서 ‘머리카락’은 중요한 소재다. 앞서 돌무치가 도치(돌무치가 군도로 합류하며 얻은 이름)로 변하며 밀게 된 머리,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따르는 양반들의 상투를 취미로 과감히 자르는 도치의 모습, 대호(이성민)과 맞서며 풀려버린 조윤의 아리따운 긴 머리까지 간간히 ‘머리카락’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서 조윤을 향한 복수에 성공한 도치가 유일하게 조윤의 상투만은 자르지 않은 게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윤은 이미 죽었고 그의 상투를 자른다는 것이 도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또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지켜주고자 했을 겁니다. 도치도 시간이 흐른 만큼 성숙했을 거고요. 마지막에 도치가 조윤의 조카를 안고 말을 달리는 장면은 아마도 도치가 군도의 리더가 되며 이젠 또 다른 군도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을 바꾸려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한 의적이었다면 이제는 보듬고 나가는 의적떼를 만들겠다는 거죠. 도치는 원래 모자라서 계산 없이 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거죠.”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군도’의 내용은 탐관오리들의 학정이 판치던 망할 세뚜렷이 상을 통쾌하게 뒤집은 의적들의 이야기다. 부제를 달 만큼 백성들의 민란은 스크린에 나오지 않는다. 막판에 백성 장씨(김성균)이 조윤을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 될 뿐이다. 왜 윤 감독은 백성들의 이야기를 더 담지 않았을까.

윤 감독은 “불특정 다수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걸 정확히 표현하려면 군도를 따라가다가 바뀌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인 도치와 조윤이 만나는 절정의 순간이 민란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적절할거라 생각해 백성들의 모습은 살짝 뒤로 뺐다”고 말했다.

열심히 화면에 담은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벌판에서 말달리는 장면은 만족할 만큼 찍지 못했다. 수 마리의 말을 클로즈업해서 찍는 다는 것은 너무 위험했고 실제로 윤지혜가 촬영 도중 낙마하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모두 경주마 출신이라 빨리 달리려는 본능이 있었다. 강동원의 말이었던 ‘그레이스’는 시속 80km까지 달렸다. 가까이서 찍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안전이 우선이었다”고 밝혔다.

‘군도’를 시원섭섭하게 떠나보낸 윤 감독은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쌓였던 피로를 풀고 결막염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머릿속이 백지장 상태다. 예전엔 전작이 끝나면 차기작 생각부터 났는데 ‘군도’를 마치곤 아무런 생각이 안 나더라”고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감독에게 작품은 얻어걸리는 운명 같아요. 책도 보고 여러 방법을 써보는데 그렇게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일종의 연애죠. 내 연인을 만나면 단번에 알아보잖아요. 작품도 순간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다려야죠. 또 다른 운명을.”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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