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9회에도 155km…‘강철 어깨’ 리처즈

입력 2014-08-2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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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A 선발 개럿 리처즈

2009년 신인드래프트 지명 후 2년간 스윙맨
올 첫 선발 불구 평균 154.5km 강속구 위력
지난 6월 애스트로스전선 무결점 이닝 대열
사이영상 다저스 그레인키 상대 첫 완봉승도
팀 운명 짊어진 강철어깨…사이영상급 활약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지난 2002년, 메이저리그에서는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랠리 몽키’ 신드롬을 앞세워 홈런왕 배리 본즈가 이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대결에서 4승3패로 정상을 차지했다. 2005년 팀명을 LA 에인절스를 바꿨다.

올 시즌 에인절스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숨막히는 페넌트레이스를 펼치며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 시즌 78승으로 승률 0.481에 그쳐 팬들을 실망시킨 에인절스는 딱히 눈에 띄는 전력 보강을 하지 못했지만 1년 만에 전혀 다른 팀으로 바뀌었다.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마이크 트라웃과 백전노장 앨버트 푸홀스 등이 이끄는 중심 타선의 파괴력을 앞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그 어떤 팀을 만나도 확실하게 승리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에이스 투수를 발굴해 냈다는 점이다.

선발투수이면서도 평균 96마일(154.5km)의 불같은 강속구를 뿌려대는 개럿 리처즈(26)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사이영상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 프랜차이즈 스타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지역 연고 선수들이 고향 팀에서 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에인절스는 예외다. 20일(한국시간) 현재 13승씩을 따내고 있는 리처즈와 제러드 위버(32), 10승을 거둬 5년 연속 두 자리수 승리를 거둔 좌완투수 CJ 윌슨(34)이 모두 LA 인근에서 태어났다. 18홀드를 기록하고 있는 셋업맨 케빈 젭슨(30)의 고향은 애너하임이다.

2006년부터 8년째 에인절스에서만 뛰고 있는 위버의 연봉은 1620만 달러. 텍사스 레인저스를 떠나 2012년 FA(프리에인전트) 계약을 체결한 윌슨은 1650만 달러를 받고 있다. 반면 올 시즌 처음 풀타임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리처즈의 연봉은 52만 달러에 불과하다. 에인절스 팬들은 지역 연고 출신 선발 3총사가 12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불펜투수에서 붙박이 선발로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리처즈는 전체 42번으로 에인절스에 지명됐다. 빠른 볼을 앞세워 마이너리그를 평정하던 그가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것은 2011년 8월 11일 뉴욕 양키스전. 위버 대신 마운드에 올라 5이닝 동안 6실점을 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른 그는 총 7경기(3선발)에서 승리 없이 방어율 5.79로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 트리플A 시즌을 맞았지만 고질적인 제구력 난조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10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5승2패(방어율 4.31)에 그친 것. 삼진을 48개 잡는 동안 허용한 볼넷은 29개나 됐다.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지만 부상자명단에 오른 위버를 대신해 6월 6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등판해 7이닝 1실점으로 생애 첫 승을 따냈다.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4승3패, 1세이브(방어율 4.69)로 루키 시즌을 마쳤다. 201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17번 선발 출전을 포함해 총 47경기에서 7승8패, 1세이브(방어율 4.16)를 기록했다. 2년 동안 선발과 불펜을 모두 소화해내는 ‘스윙맨’ 역할을 한 그에게 에인절스는 올 시즌부터 풀타임 선발의 임무를 부여했다.

● 압도적인 구위

리처즈의 강점은 최고 시속 99마일(159km)의 강속구를 뿌린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중 그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요르다노 벤투라(23)가 유일하다. 공만 빠른 게 아니다. 시속 95마일(152km) 안팎으로 들어오는 투심패스트볼이 주무기다.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은 “리처즈의 공은 한 마디로 지저분하다. 특히 빠른 속도로 들어오다 가라앉는 싱킹패스트볼의 위력은 단연 압권”이라고 칭찬했다.

컷패스트볼과 슬라이더까지 주로 빠른 공을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스타일인데,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필살기로 삼아 피안타율이 0.188에 불과하다. 리처즈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다승(13) 공동 3위, 최다 이닝(167) 8위, 탈삼진(164) 7위, 방어율(2.53) 5위, 이닝당 출루허용(1.01) 5위, 승률(0.765)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 무결점 이닝

한 이닝을 9개의 공으로 삼진 3개를 잡아내는 것을 ‘무결점 이닝(Immaculate Inning)’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총 76번밖에 나오지 않았을 만큼 희귀한 기록이다. 지난 2002년 5월 12일 애리조나 디백스에서 활약하던 김병현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8회 스콧 롤런, 마이크 리버설, 팻 버럴을 상대로 모두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바 있다. 리처즈는 지난 6월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대결에서 2회 존 싱글턴, 매트 도밍게스, 크리스 카터를 공 9개로 삼진 처리해 무결점 이닝 대열에 합류했다. 얼마나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생애 첫 완봉승

LA에 연고를 둔 다저스와 에인절스가 펼치는 대결을 일컬어 ‘프리웨이 시리즈’라 부른다. 올 시즌에는 8월 5일부터 4연전을 펼쳤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첫 번째 경기는 잭 그레인키와 리처즈가 선발로 격돌했다. 다저스의 우위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경기는 리처즈가 9이닝 동안 5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한 데 힘입어 에인절스가 5-0으로 승리했다. 이날 122개의 공을 던진 리처즈는 9회에도 155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며 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사이영상 수상자인 그레인키를 상대로 거둔 생애 첫 완봉승이어서 더욱 빛이 났다.

다저스와 에인절스가 플레이오프에 동반 진출한 것은 2009년이 마지막이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두 팀이 펼치는 ‘프리웨이 월드시리즈’도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 리처즈의 강철 어깨에 에인절스의 사활이 걸려있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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