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제자 최보민, 가슴 찡한 약속

입력 2014-09-2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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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양궁인생 열어주신 故 신현종 감독님…금메달 목에 걸고 찾아뵐게요”

세계新 쏘고 컴파운드 단체결승 견인

작년 세계선수권 도중 뇌출혈로 순직
“활 쏠때마다 생각…지금도 곁에 계신듯”

“요즘도 가끔씩 꿈속에서 감독님을 뵈어요.”

8월말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 2014인천아시안게임 준비에 여념이 없던 여자컴파운드대표팀의 맏언니 최보민(30·청주시청)은 고(故) 신현종 감독을 떠올리며 이렇게 읊조렸다. 신 감독은 한국 컴파운드(리커브와는 달리 양 끝에 도르래가 달린 활) 양궁의 선구자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여자컴파운드대표팀 사령탑으로 나선 터키 안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순직했다.

당시 현장에는 엄청난 강풍이 불었고, 선수들의 화살은 번번이 표적 중앙을 빗나갔다. 최보민 역시 프랑스와의 단체전 8강전 도중 0점을 쐈다.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 감독은 대표팀의 부진 속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 때문에 최보민은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신 감독은 최보민이 제2의 양궁인생을 살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준 인물이다. 2007년 세계 최강 리커브 양궁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최보민은 어깨 부상 등으로 부진에 빠졌다. 은퇴의 기로에서 신 감독이 컴파운드를 권했다. 사제는 청원군청 양궁팀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한솥밥을 먹으며 실력을 키워갔다. 결국 최보민은 컴파운드 양궁으로 또 한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올 4월에는 세계양궁연맹(WA) 1차 월드컵에서 개인·단체 2관왕에 오르는 등 만개한 기량을 보여줬다. 마침내 인천에선 세계기록 작성에도 힘을 보탰다.

최보민, 석지현(24·현대모비스), 김윤희(20·하이트진로)로 구성된 여자컴파운드대표팀은 25일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8강전에서 라오스를 238-215로 꺾었다. 238점은 미국대표팀이 2011년 8월 작성한 종전 세계기록(236점)을 2점 경신한 것이다. 24발 가운데 22발을 10점에 명중시킬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경기였다. 대표팀은 이어 열린 4강전에서도 이란을 229-222로 누르고 결승에 안착했다. 이로써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된 컴파운드에서 한국은 금메달에 한발 더 다가섰다.

대한양궁협회는 지난해 10월 24일 협회장으로 신 감독의 장례를 치렀다. 고인은 충북 청주 청원구 오창장미공원에서 영면했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청원구 양궁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걸어서는 5분 거리다. “그곳에서 활을 쏠 때마다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종종 묘소에 찾아가 감독님께서 좋아하시던 담배를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곁에 계신 것만 같아요.” 최보민은 “아시안게임을 메달을 걸고 다시 한번 감독님을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고인과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남녀 컴파운드 양궁 개인전과 단체전 결승은 27일 열린다.

인천|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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