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가 말하는 나의 AG] 유남규 “중국 만나면 진다는 생각부터 탈피해야 해볼만하다”

입력 2014-09-29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6. 탁구 유남규

만18세, 서울AG서 중국선수 연달아 깨고 金
노력형 탁구천재의 악바리근성 대표팀에 이식

세계탁구는 이른바 ‘중국의 세상’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탁구는 중국의 대표적 메달밭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1990년대에도 중국탁구의 기세는 무서웠다. 그러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선 천하의 중국선수들도 질리게 만든 존재가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한국탁구의 아이콘’ 유남규(46)다. 현재 그는 남자탁구대표팀 감독을 맡아 후배들의 조력자로서 다시 한번 중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 혜성처럼 나타난 ‘탁구 악바리’

어린 시절부터 ‘탁구천재’로 불렸던 그는 광성공고 1학년 때인 198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파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자신감 하나 믿고 나선 첫 국제대회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유남규 감독은 “첫 경기에서 북한선수를 만나 지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그런 패배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 2년 동안 이를 악물고 운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야간훈련이 오후 8시에 끝나면, 오후 10시까지 남아 땀을 흘렸다. 그 같은 노력이 2년간 계속됐다.

그의 ‘모래주머니’ 이야기는 탁구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유 감독은 “대부분의 선수가 야간훈련 때 반바지를 입는데, 나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걸 안보이게 하려고 긴 바지를 입었다. 항상 긴바지를 입고 야간운동을 해서 남들에게 모래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는데, 선배들이 ‘유남규의 몸이 무거워졌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틀 정도 지나면 모래주머니를 찬 상태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대회를 앞두고 모래주머니를 벗으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져서 경기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걸 어느 날 현정화(45·전 여자탁구대표팀 감독)가 봤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 노력의 결실로 얻은 금메달

꾸준한 노력과 악바리 같은 승부 근성으로 똘똘 뭉친 그는 서울아시안게임에 나섰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8세(고3). 최대 고비는 결승이 아닌 8강이었다. 8강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장자량(중국)을 만났다. 세트스코어 2-2에서 맞은 5세트에서 그는 10-18까지 몰리며 패배 위기에 놓였지만, 극적인 역전극을 펼쳤다. 유 감독은 “아마 외국에서의 경기였으면 역전을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1점을 따라잡을 때마다 응원이 엄청났다. 거기에 힘을 받고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10-18의 점수가 14-19, 17-19가 됐고 거기서 1점을 내줘 17-20이 됐다. 1점만 더 주면 끝나는 경기였는데, 기적처럼 5점을 연거푸 따냈다. 결국 22-20으로 승리했다. 장자량과의 8강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1위를 꺾은 뒤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4강, 결승 상대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유 감독은 “결승에서 중국선수와 만났는데, 그 당시 중국에서 키우는 22세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내가 8강에서 장자량을 꺾고 올라온 걸 알아서 그런지, 경기 시작 때부터 위축이 된 것 같더라. 그 분위기를 그대로 몰아가서 승리를 거뒀다”고 밝혔다. “서울아시안게임은 지금의 유남규를 있게 해준 대회다. 그 때의 자신감이 이어져서 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까지 이어졌다.” 세계탁구무대에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알리는 동시에 한국탁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유남규’라는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승리 DNA’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코치로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던 유 감독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선 감독으로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그가 현역에서 물러난 뒤로 16년이 흐른 지금, 한국탁구는 중국의 벽에 가로막혀있다. 게다가 싱가포르, 대만, 일본은 꾸준한 투자와 유망주 육성을 통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선수시절 ‘악바리’로 유명했던 그의 근성은 감독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금메달 획득의 길은 더욱 험난해졌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 감독은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선수들이 중국과 10번 만나면 4∼5번은 이겼다. 하지만 지금은 10번에 겨우 1번 이긴다. 이제는 싱가포르, 대만, 일본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약간 우세한 5대5 정도다. 지는 것도 습관이 되면 안 된다. 자꾸 이겨봐야 자신감이 생기고 이기는 요령도 터득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연습경기 때도 무조건 이기려고 애를 쓰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중국을 만나면 진다’는 생각을 탈피하는 게 최우선이다”고 밝혔다. 선수들의 승리를 돕기 위해 그는 상대 선수들의 스트로크 패턴, 성향 분석은 물론 심리적 부분까지 세세히 분석하고 있다.

유 감독은 “2004아테네올림픽 때 (유)승민이의 훈련을 돕던 와중에 협회와 트러블이 생기면서 대표팀을 떠나고 말았다. 그 때 승민이가 금메달을 땄는데, 옆에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그 한을 푸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 선수들이 그동안 착실히 준비해왔다. 다시 한번 한국탁구가 정상에 서는 순간이 바로 이번 아시안게임이 되길 바란다”며 금메달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인천|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topwook15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