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맨홀’ 정유미 “연기의 한계, 부수고 싶을 때 있다”

입력 2014-10-26 12: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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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유미는 “김새론과 촬영을 앞두고 수화를 배웠다. 수화가 말이 되는 게 신기하고 재미 있었다”며 “처음에는 딱딱했는데 나중에는 대사할 때처럼 리듬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김새론이 저랑 닮았다고요? 기분 좋네요.”

배우 정유미(31)가 17살 어린 동생 김새론(14)을 언급했다. 정유미는 “예전에도 가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남남인 두 사람을 자매로 이어준 것은 영화 ‘맨홀’이다.

정유미는 ‘맨홀’에서 갑자기 사라진 동생 수정(김새론)을 구하기 위해 맨홀로 뛰어드는 연서를 연기했다. 그가 대적하는 인물은 연쇄 살인마 수철(정경호). 연서는 가녀린 몸으로 수철에게 맞서다 여러 번 위기에 몰린다. 긴박한 상황에서 다시 동생을 놓치는 장면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토록 현실적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정유미는 여동생이 없다.

“눈 앞에 있는 (김)새론이만 봤어요. 없는 여동생을 상상하거나 대상을 설정하지는 않았어요. 연기할 때 김새론 자체가 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정유미가 주연한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 김새론이 카메오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이 제대로 연기를 맞춘 것은 처음. 게다가 ‘맨홀’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도 거의 없다. 극 중 김새론이 청각 장애를 앓는 소녀라는 설정 때문이다.

정유미는 “김새론과 같이 하는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잘 맞더라. 다음에도 꼭 연기해보고 싶다”면서 “또 자매가 돼도 좋다. 어떻게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함께 연기한 배우 모두 다시 만나고 싶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으레 하는 형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정유미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연애의 발견’을 통해 에릭과 2007년 드라마 ‘케세라세라’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또한 ‘맨홀’의 또 다른 파트너 정경호와도 2010년 단막극 ‘위대한 계춘빈’에 이어 재회했다.

“함께 작품을 한다거나 같은 소속사라고 해도 배우들끼리 친해지는 건 아니에요. 경호는 촬영하면서 재밌었어요. 한 번씩 경호가 ‘작품 같이 하자’고 물어보는데 그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자신감을 상기시켜준 달까. 고맙죠.”

정유미는 “단막극을 찍을 때도 느꼈지만 정경호가 리액션이 좋다”며 “이번에는 도망치고 쫓는 관계였으니 다음에는 일상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정유미는 정경호에 대한 칭찬을 잇다 여배우로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여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이 다양하지 않다”며 “새로운 악역을 만들어내는 정경호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철은 기존 악역과 다른 또 다른 악마예요. 일상적인 캐릭터도 아니어서 쉽지 않을텐데 몰입해서 연기하더라고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제가 그걸 할 수는 없고…배우로서 고민하는 시간까지 부러웠어요.”

역시 배우는 배우였다. 정유미의 연기 고민은 끝이 없었다. 정유미는 “진짜 때리거나 부수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정말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게 참 어렵다. 가끔 실제로 부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맨홀’ 때도 세트에서 찍으니까 한계가 있었다. 한 공간에 기둥이나 사다리를 놓고 ‘다른 곳에 온 것처럼 연기하라’더라”며 “물론 그게 내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숙제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고민은 그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는 증거. 실제 정유미는 촬영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맞고 쓰러지는 등 강도 높은 액션도 겁 없이 소화했다. 더러운 맨홀 속을 그린 영화만큼 몸에 흙을 묻히고 바닥에 뒹구는 건 다반사였다.

특히 수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구정물에 몸을 숨기는 신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감을 섞어서 만든 인조 구정물이지만 상당히 리얼한 느낌. 정유미는 “진짜 구정물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딱 ‘한 번’은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눈 꼭 감고 참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정유미가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믿고 가는 스태프에 있다. 그에게 스태프는 시나리오만큼 중요하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스태프와 감독은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감독님이나 스태프나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대화하고 때로는 싸우는 그 과정에서 작품이 나오는 거니까요. 몇 달을 함께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고 재미있어도요.”

우연의 일치지만 ‘맨홀’은 정유미가 대학 동기들과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영화를 연출한 신재영 감독, 송현석 조명 감독과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동기다. 이들이 주연 배우와 헤드 스태프로 만난 건 처음. 강산이 변하는 동안 어느덧 그들도 성장했다.

정유미는 데뷔 10년차가 된 것에 대해 “말도 안 된다. 그동안 내가 뭘 했다고…”라고 멋쩍어했다. 그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다만 이제 촬영장에 가면 아저씨 같은 애들이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전에는 ‘평생 연기하면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춥고 배고프고 잠도 제대로 못자니까. 생각이 왔다 갔다 해요. 톱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이대로 연기하면서 저대로 살려고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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