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이 됐다. 계약조건은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 등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0억 원이다. 김 감독은 “한화는 내 인생 마지막 감독 자리”라며 “할 수 있는 건 다 쏟아 붓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스포츠동아DB
“84년 프로감독 시작한 대전
시작과 끝이 같으면 좋잖아
팬들 지지, 나로선 감동이지
지옥펑고? 당연한 것 아냐?
백지야 백지, 이제 시작이야”
“내 인생 마지막 감독 자리야. 내가 가진 걸, 할 수 있는 건 다 쏟아 부어야지.”
한화 제10대 감독으로 선임된 김성근(72) 감독은 26일 스포츠동아와의 통화에서 “미안하게 됐다”는 말부터 건넸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을 맡아 관전평으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었지만, 한 번도 관전평을 하지 못하고 한화 사령탑으로 가게 된 데 대한 사과(?)부터 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최근 “지금까지 제의가 없다면 불러줄 팀이 없다는 거야”라며 마음을 비우고 플레이오프부터 관전평을 하기 위해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최근 3년 연속 최하위를 한 한화는 팀 재건을 위해 ‘야신’ 김성근을 선택했다. 최근 그룹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25일 밤 한화 정승진 사장과 노재덕 단장이 김 감독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하며 계약을 마쳤다. 김 감독은 “3일 전에 처음 전화가 한번 왔는데, 사장과 단장이 계약서까지 들고 일산으로 찾아 왔더라. 기회를 준 한화 구단에 고맙다”며 웃었다.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0억 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의 조건이었다.
● 프로감독 시작도 대전, 마무리도 대전
-프로 감독을 시작한 곳도 대전이었는데 30년 만에 다시 대전에서 감독을 하게 됐다.
“30년 만의 대전이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데, 시작과 끝이 같으면 좋잖아. 허허.”
OB는 1984년까지 대전을 연고로 하다 1985년부터 서울로 이전했다. 김 감독은 1989년까지 OB 감독을 지낸 뒤 태평양(1989∼90년), 삼성(1991∼92년), 쌍방울(1996∼99년), LG(2001∼02년), SK(2007∼11년)를 거쳤다. 한화는 그가 7번째 감독을 맡은 팀이 됐다. 1995년 해태 2군 감독까지 포함하면 8개 팀에서 감독 직함을 달게 됐다.
-시작과 끝이라면 감독으로서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것인가.
“마지막이지. 내 인생 마지막 감독 자리라고 생각해. 그동안의 경험과 내가 가진 걸, 할 수 있는 건 다 쏟아 부어야지.”
● 팬들 지지 감동적이지만 부담도 된다
-구단도 구단이지만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 영입을 위해 서명운동도 하고, 1인 시위도 했다. 최종 결정에 그 영향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나로선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그만큼 더 책임감도 커지고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외부에서 볼 때 한화는 무엇이 문제였나.
“역시 투수력이 약하다. 지키는 야구가 안 되는 게 약점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에 들어가 일일이 살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격보다는 베이스러닝이나 기동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정근우 등 빠른 선수가 있기는 하지만 스피드가 중요하다.”
● 한화에서도 지옥의 펑고는 계속
-희망적인 부분도 있나.
“가능성 있는 선수는 많다. 투수는 이태양도 있고, 송광민이나 강경학 등 젊은 야수들도 올해 기회를 얻으면서 성장했다. 김응룡 감독이 당장의 성적보다 구단 미래를 위해 유망주들을 많이 육성해 놓은 것 같은데, 본인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내가 인계를 받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라기보다는 프로니까 이겨야한다.”
-김성근식 훈련은 독하기로 유명하다. 당장 ‘지옥의 펑고’가 시작되는가.
“당연한 거 아냐? 백지야 백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