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인의 황당한 월남스토리에 ‘웃다가, 울다가’

입력 2014-11-06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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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한 이야기로 실컷 웃다가도 어느 순간 뭉클한 감동을 안겨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연극 월남스키부대. 사진제공|쇼앤뉴

코믹극 표방…진짜 이야기는 감동적
감초 같은 도둑 에피소드…배꼽 빠져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풉!”하고 웃을 것이다. 기상이변이 아닌 한 눈을 보기 어려운 월남에 스키부대가 있을 리 없다. 실은 있기는 있었다는 설이 있지만 진짜로 스키를 타며 전투를 벌이는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하튼 ‘월남스키부대’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거나, 군 생활을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낸 사람이 허세를 떨 때 쓰는 말이다. 유사한 표현으로는 ‘UDT(우리동네특공대·원래 의미는 해군특수전전단)’가 있다.

연극 월남스키부대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노인(이한위 분)과 가족의 이야기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은 마냥 웃자고 만든 극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행을 위해 ‘코믹’을 앞세운 것은 맞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꽤 감동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과장(코믹물의 특징이다)되어 있으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입만 열면 황당한 월남스토리를 쏟아내는 김노인은 실은 치매에다 함께 위병소 근무를 섰던 김일병(이시훈 분)의 환영과 함께 살아간다. 아들 김아군(이석 분)은 생활력 제로의 무명 영화배우. ‘조연으로 써 주겠다’는 말에 혹해 영화감독의 빚보증을 섰다가 차압이 들어와 집에서 쫓겨날 판이다. 발레리나의 꿈도 포기한 채 시집을 왔다가 무능한 남편, 치매 걸린 시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는 며느리(노수산나 분), 집을 털러 들어왔다가 김노인의 말상대가 되는 어설픈 도둑(진태이 분), 베트남에 위문공연을 갔다가 덜컥 김일병의 아이를 배게 되는 여가수(오상은 분)가 1시간 40분 동안 극을 꾸려 나간다.

80%를 웃기다가 막판 20%에 울리는 코믹극의 고전적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연출(심원철)이 상당히 세련됐다. 실컷 웃기다가 느닷없이 심각해지는 극이 대부분이지만 월남스키부대는 칼로 무 자르듯 하지 않는다. 웃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진다. 실제로 웃으면서 정신없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드는 여성관객을 볼 수 있었다.

초반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무대 왼쪽 장식대에 놓인 하얀 도자기를 기억할 것. 나중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김노인과 김일병의 대화도 재미있지만, 감초처럼 나타난 도둑의 에피소드도 배꼽을 뺀다. 세 작품 연속 ‘찌질남’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노수산나의 남자 다루는 연기도 흥미롭다.

지금 당장 누군가 “요즘 소극장 작품 뭐가 재미있어?”하고 묻는다면, 숨도 안 쉬고 월남스키부대를 추천해줄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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