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이재원. 스포츠동아DB
재활 딛고 SK 4번타자로 우뚝선 모습 기뻐
부친 이화용씨 구단 요청 받고 시상식 참가
신혼여행 이재원 대신 수상후 남다른 감회
“네 번의 수술을 딛고 우뚝 선 내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SK 이재원(사진)의 아버지 이화용 씨는 아들이 야구를 시작한 날(1998년 12월20일)을 정확히 기억했다. 자신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외동아들 재원이는 야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 도화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회를 했는데 재원이가 공 던지기에서 전체 1등을 했어요. ‘너 야구할래?’라고 물었죠. 선뜻 ‘하겠다’고 말해 야구부가 있는 숭의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야구를 좋아한 아버지는 재원이를 데리고 인천 도원야구장에 자주 데려갔다. 그 나이 또래의 꼬마들이라면 뛰어다니기 바쁠 텐데 재원이는 야구장만 가면 가만히 앉아서 뚫어져라 야구를 봤다. 놀 때도 야구만 하고 놀았다.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것은 꼭 포수를 도맡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야구부로 재원이를 데려갔다. “야구한지 넉 달 만에 주전선수가 됐고, 다섯 달 만에 홈런을 쳤어요.”
상인천중과 인천고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재원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SK의 1차지명(2006년 신인 드래프트)을 받은 것도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고 불운도 겹쳤다. “포지션이 포수이다 보니 자리 잡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박경완, 조인성, 정상호 같은 대선배들이 있었으니까.” 더 큰 시련은 4차례의 수술이었다. 2008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시작으로 2012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입은 부상 탓에 두 차례에 걸쳐 손목 수술을 했다. 2013년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훈련 때 투구에 맞아 또 부상을 입었다. 겨울만 되면 다치니 아버지는 “12월이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그 역경을 딛고 재활을 견뎌내 기어코 올라선 아들이 고맙다. 재원이가 4할을 칠 때도 다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뿐이었다. 아들이 나오면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는데 언제 나올지 몰랐던 대타 시절과 달리 SK 4번타자로 올라선 지금은 처음부터 재원이의 등장 순서를 알고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재원이는 6일 SK 입단 후 9년이라는 긴 시간을 곁에서 지켜준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 덕분에 8일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일구대상 시상식 ‘의지노력상’은 아들 대신 아버지가 대신 받았다. SK 구단의 요청으로 시상식장에 온 아버지는 “27년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결혼까지 시킨 재원이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