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욱 감독 “훈련도 놀이처럼…승리보다 성장이 중요”

입력 2015-02-18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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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한국야구의 미래다! 29년 만에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박종욱 감독(가운데)이 서울 잠신중학교에서 진행된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도하는 동대문구 리틀야구단 소속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리틀야구대표팀 박종욱 감독을 만나다

● 박종욱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 1977년 12월28일 서울생

▲학력 : 이문초∼중앙중∼중앙고∼영남대

▲지도자경력 : 덕수중 코치(2000)∼성동초 코치(2000)∼광진구 리틀야구 감독(2007)∼동대문구 리틀야구 감독(2012)

▲주요 수상경력 : 2014년 제68회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 2014년 일구대상 수상


“월드시리즈 우승 후 리틀야구 관심 커져 만족
후원도 들어오고 야구부도 150개로 늘었죠
더 중요한 건 지금보다 프로 갈 수 있는 미래”

‘한국 리틀야구의 영광’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지난해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29년만의 우승을 이뤄낸 박종욱 동대문리틀 감독(38)을 만나러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신중학교에 도착했을 땐,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운동장을 적시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4시 무렵, 선수들은 실내연습장에 모이자 곧바로 타격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인지 놀이인지 잘 분간이 안 갔다. 엄숙함보다는 웃음이 훈련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만 12세 이하 대상 리틀야구는 의외로 저변이 넓어 서울시만 따져도 양천구를 제외한 20개 구에 리틀야구부가 있다. 선수 숫자를 20명만 잡아도 400명이다. 여기에 초등학교 야구부가 따로 있으니 숫자는 더욱 불어난다. 박 감독이 코치 2명과 지도하는 동대문구 리틀야구부도 선수반 13명, 취미반 20명의 학생이 있다.


● 리틀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


-세계대회 우승 후 야구하겠다는 아이들이 늘진 않았나요?

“우승했다고 더 늘진 않아요. 지금 나이는 선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요.”


-선수 모집은 잘 됩니까?

“예전에는 제가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인터넷 보고 들어와요. 현수막으로 모집할 때도 있고요. 모집은 잘돼요. 애들 없어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지난해 8월 우승 후 6개월이 흘렀네요. 뜨거웠던 관심이 좀 식은 것 같은데요.

“거의 다 잊혀졌죠. 길면 한, 두 달이라 생각했었어요.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리틀야구가 그 정도 이슈가 됐으니 감사해요.”


-지원이 달라진 점은 있습니까?

“서울시가 예산편성을 해줘서 장충야구장(서울시 유일의 리틀야구 전용구장)에 잔디 깔아주는 공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후원도 들어오고요. 2007년에 한영관 회장님이 들어오시고 전국 25개였던 리틀야구부가 지금은 150개로 늘었죠.”


-어쩌다 리틀야구 지도자가 되셨나요?

“유격수였어요. 중앙고 1년 선배가 홍성흔(두산), 송신영(넥센)이에요. 고교를 졸업하고 롯데 지명을 받았는데 대학에 갔어요. 영남대를 졸업했는데 IMF(외환위기)가 왔어요, 계약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코치하다가 광진구 리틀야구부를 6년 맡았어요. 동대문리틀야구 창단하고 4년째니 10년이 돼가네요.”


-리틀야구는 지도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은데요.

“어른 입장에서 ‘왜 저럴까’라고 보면 안돼요. 아이들이 선수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하는 거니까. ‘좋아서 나왔으면 즐겁게 야구하라’고 하죠. 먼저 웃겨주고 재미있게 해주려고 하고요. 단 예의가 없을 땐 혼낼 때가 있어요.” (지난해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잠신중 야구부원 2명이 인터뷰를 하러 잠깐 훈련장에 들렀다. 이 선수들을 보더니 아이들이 전부 모자를 벗고 깍듯이 인사했다.)


-아이들이라 뜻대로 안될 때가 많을 텐데요?

“많이 못 따라오죠. 김성근 감독처럼 하고 싶어도 아이들은 학교도 가야 되고…. 유소년 지도자는 포기할 부분은 포기해야 되요.”

박종욱 감독은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잘 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는다. 그저 야구를 좋아할 수 있도록, 야구가 즐거울 수 있도록 훈련도 놀이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 뒷이야기


-작년 리틀야구 대표팀 감독은 어떻게 맡게 된 겁니까?

“리틀야구는 지역팀이 대표로 나가요. 가령 미국은 시카고 대표, 일본은 도쿄 대표, 이런 식이에요. 지난해 서울-인천, 경기도, 남부연합팀 중 우승팀이 대표로 나가는 거였어요. 경기도에 1-2로 져서 떨어지겠구나 했는데 남부가 끝내기 뒤집기로 경기도를 이겨줬어요. 그리고 우리가 남부를 크게 이겨서 최소실점으로 올라가게 된 거죠.”


-우승까지 최대 고비는 어디였나요?

“아시아 예선이었죠. 대만이 워낙 잘하니까 우리가 29년 동안 못 나간 것 아니겠어요? (리틀야구 팀이 많은) 일본은 자동출전이고…. 사실 우리가 실력이 월등히 좋은 멤버가 아니었는데 대만 감독이 투수 운용을 잘못한 덕에 운이 좋았어요.”


-솔직히 지난해 우승은 기적입니까? 실력입니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하면서 자신이 붙었어요. 대표팀 엔트리가 13명인데 10명까지 확실했고, 3명은 저한테 알아서 뽑으라고 할 정도로 실력이 약했어요. 그런데 대만을 이기니까 미국 갈 때는 큰 부담이 없었어요, 그동안 리틀야구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운이 저한테 온 거 같아요.”


-올해도 대표팀 감독으로 나가는 겁니까?

“일구대상 시상식에서 ‘2연패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긴장해서 멘트를 까먹어서 그렇게 말했어요.(웃음) 협회에서 전임감독 얘기도 나왔는데 국가대표 감독은 고사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세계대회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요?

“가르치는 것은 한국이 더 잘 가르쳐요. 우리는 못하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데 거기는 잘할 수 있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요. 실책하면 선수가 더 괴로워하니까…. 마음은 있는데 잘 안될 때가 있었는데 생각을 바꾸려고 해요.”


-우승 멤버들은 전원 중학교 야구부에 갔겠네요?

“미국에 유학 간 친구 1명만 빼고 모두 중학교 야구부에 스카우트 됐죠. 유학 간 친구는 외할아버지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에요.”


●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가르친다


-리틀야구 감독을 오래 하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재목을 보는 눈이 생기나요?

“모르겠어요. 누가 봐도 잘하는 애들은 잘할 거 같은데 그런 아이도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겠어요. 홍성흔 선배만 봐도 제가 중, 고교 6년을 같이 다녔는데 절대 프로야구에 갈 실력이 아니었어요. 그때도 성격은 좋았는데 몸이 약해서 야구 그만두려 했었는데….”


-전혀 존재감 없던 선수가 나중에 대성할 수도 있군요?

“그럼요. 제가 임태훈, 김명성(이상 두산)을 가르쳤는데 당시만 해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이번에 넥센 1차지명 받은 최원태는 처음부터 잘했는데 이렇게 꾸준하긴 쉽진 않죠.”


-그럼 이 나이에 잘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잘하는 애들을 더 꾸짖어요. 건방 못 떨게. 인생하고 똑같아요. 지금 잘한다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보니까 상당히 훈련 분위기가 밝습니다.

“운동을 많이 안 시켜요.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개인 연습 많이 하고. 풀어놓는 스타일이에요. 단 딴 짓하면 많이 혼내요. 선수들은 주중에 하루는 쉬어요. 저 운동할 때만 하더라도 운동하다 웃으면 혼났는데 지금은 인상 쓴다고 야구 더 잘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해요.(아이들은 박 감독을 두고 ‘착하다’고 말했다. 다만 ‘화가 나면 정말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리틀야구 지도자의 목표는 뭡니까?

“지도자마다 다 다르죠. 승리를 중요시하는 팀은 연습량이 6∼7시간씩 돼요. 저는 성장이에요. 프로에 갈 수 있는 성장. 지금보다는 나중.”


-리틀야구 지도자로서 가장 힘든 점을 하나 꼽는다면?

“미국 가서 보니까 리틀야구 시설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프로야구는 많이 좋아졌지만 리틀야구는 아직 힘들어요. 장충야구장을 쓰는 팀도 있지만 3월부터 대회가 있으면 이 팀도 애로가 많아요. 경기도에 리틀야구장은 구리하고 남양주 정도고요.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 그것만 잘돼 있으면 한국 아이들이 미국 아이들한테 야구는 절대 안 떨어져요. 이제 저변은 많이 됐어요. 저변을 뒷받침해주는 시설이 절실하죠.”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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