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편의 시로 본 ‘조선국왕 연산군’

입력 2015-05-29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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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광기와 고독, 사랑을 그리다


● ‘폭군’ 연산군은 시인이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포악했던 임금은 연산군(1476~1506)이다. 10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 동안 150명 이상을 죽였다.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자를 품에 안았다. 그 수는 1000명을 넘었다. 그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궁중암투에 패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후 연산군은 그를 적대시하는 후궁들과 조정대신들에게 둘러싸여 고독한 어린시절을 보낸다. 고독은 문학을 잉태한다. 연산군의 고독은 시(詩)를 낳았다. 시는 그의 낙(樂)이었고 벗이었다. 보위에 오른 뒤에도 88편이나 되는 많은 시를 남겼다. 88편의 시엔 그의 삶이 있었고 정치가 있었고 시대상이 담겨있다.


● 연산군의 지은 88편의 시로 본 미친 사랑의 노래

새 책 ‘조선국왕 연산군’(이수광 지음 l 책문 펴냄)은 조선왕조의 문제적 임금인 연산군의 마음속을 청진기를 통해 들여다 본 책이다. 청진기 역할을 하는 것은 연산군이 남긴 88편의 시다. ‘88편의 시로 살피는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88편의 시로 그의 내면에 흐르는 광기와 고독 그리고 사랑을 들여다 본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현란하게 교직한다. 그러니까 ‘팩션 역사서’인 셈이다.

이 책은 먼저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 연산군의 고독한 어린시절, 사림파와 훈구파의 권력 싸움, 연산군과 대신들의 갈등, 연산군의 폭력과 음행,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주요 사건키워드를 8가지로 나눴다. 다행히도 연산군은 삶의 고비마다 시를 남겼다. 연산군이 지은 시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작가는 연산군과 그의 간신들이 만들어간 광기와 폭력의 시대를 현장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 “알리라,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

연산군의 시는 때론 독사가 됐고 때론 솜사탕이 됐다. 시대를 꿰뚫었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왕이 원하면 부인이라도 바친다’는 연산군 시대의 임숭재와 임사홍은 천고의 간신으로 기록됐다. 이들에 대한 지은 시는 이렇다. ‘작은 소인 숭재, 큰 소인 사홍이라!/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천도는 돌고 돌아 보복이 있으리니/알리라,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

또 연산군이 총애했던 기생 월하매가 병이나 죽자 이런 어제시를 남겼다. ‘너무나 애달파서 눈물을 거두기 어렵고/슬픔이 깊어서 잠을 이룰 수 없네./마음이 어지러워 애간장이 끊어지니/목숨이 상하는 것은 이로 인한 것이라.’ 월하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줄줄 흐른다.

피냄새가 풀풀나는 시도 있다. ‘효와 의를 다 가져야 선왕의 규범에 맞고/사(邪)에 끌려 교(巧)를 부리면 세상이 흠으로 친다/만약 오늘의 조의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서릿발 같은 칼날 아래 죽음을 면치 못하리’ 왕명에 저항하는 자는 서릿발 같은 칼날 아래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어제시다.

이 책의 저자 이수광 작가는 이미 ‘팩션형 역사서’를 많이 출간에 독자들에게 익숙하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소설 징비록’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등이 그것이다. 특히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내공 덕에 책은 무척 재미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다뤘던 연산군이라는 인물이라 더더욱 흥미진진하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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