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영화계 ‘큰 별’ 김진규 타계

입력 2015-06-18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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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6월 18일

1998년 오늘,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굵은 글씨로 아로새겨진 배우가 타계했다. 김진규. 이날 오전 4시30분께 서울 강남성모병원(현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지병인 골수암은 76세의 그를 관객 곁에서 영원히 빼앗아가버렸다.

1922년 충남 서천 태생인 김진규는 1954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자동차 수리공장의 사환으로 일하며 대전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일본 오이타현 농업전문학교를 다녔다.(한국영상자료원 자료) 이후 귀국해 연극 ‘살구꽃’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해방 뒤 장동휘 등과 함께 극단 장미를 만들어 ‘아름다운 새벽’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이강천 감독의 눈에 들며 영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960년대 부드럽고 단정한 이미지에 이목구비 뚜렷한 외모는 그를 멜로영화의 주연으로 이끌었다. 1960년작 ‘이 생명 다하도록’ 등이 그 대표작이다.

한국영화사가 그를 더욱 또렷하게 기록한 것은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신산한 세상살이에 휘둘림 당하는 소시민의 이미지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사진)’가 그 첫 무대로, 흔들리는 중산층의 모습을 연기해냈다. 1961년 유현목 감독이 연출해 해외에서도 명성이 높은 ‘오발탄’에선 분단의 아픔에 시달리는 소시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7월 회고전을 계획한 한국영상자료원은 추모전으로 바꿔, ‘피아골’과 ‘하녀’,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 장일호 감독의 ‘난중일기’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생전 김진규의 뜻을 따랐다. 한국영화사는 600여편에 달하는 출연작 가운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삼포 가는 길’ ‘카인의 후예’ 등도 대표작으로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 삶도 굴곡이 많았다. 이혼의 아픔 뒤 그는 1955년 영화 ‘옥단춘’에서 만난 동료 김보애와 재혼했다. 하지만 1970년 주연작으로 직접 제작한 ‘성웅 이순신’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이혼에 이르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1997년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김보애는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곁에서 지켰다. 이들의 딸과 아들인 김진아와 김진근은 부모의 뒤를 이어 연기자가 됐다. 198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 김진아는 지난해 8월 아버지를 따라갔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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