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매미가 울수록 kt의 여름은 더 뜨겁다

입력 2015-06-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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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투수 김재윤(왼쪽)과 장시환은 신생팀으로 와 뒤늦게 꽃을 피운 선수들이다. 시즌 초반 고전했던 kt는 여름이 되자, 김재윤과 장시환 같은 ‘매미’들이 울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사진|kt위즈·스포츠동아DB

인고의 세월 보낸 매미들 울음처럼…
8년간 단 1승도 못했던 장시환의 부활
파란만장 야구인생 김재윤의 투혼
마법사의 여름은 이들이 울어서 뜨겁다


여름이다. 매미 울음이 번지는 계절이다. 극성스럽고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가 한낱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들이 우는 사연을 안다면 성가심보다는 정겨움으로 들리리라.

매미가 울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알로 10개월, 굼벵이로 6∼8년. 성충이 되기 전 그들은 축축하고 어두운 땅속에서 그렇게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 어떤 놈은 성질이 급해 그보다 빨리 세상에 나오기도 하지만, 17년 이상 세월의 숙성이 필요한 놈도 있다. 땅속에서 나온 유충이 곧바로 매미가 되는 것도 아니다. 허물을 벗은 다음에야 날개를 말리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매미들은 여름을 향해 목 놓아 운다.

막내구단 kt. 신생팀인 까닭에, 팔도에서 온 사연 많은 굼벵이들이 많다. 오랜 세월 음지에서 굼벵이로 지내던 이들 중 세상을 향해 뜨겁게 울음 짓는 매미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투수 장시환(28)과 김재윤(25)이 먼저 울었다.

장시환은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지명돼 현대에 입단했지만, 지난 8년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다.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을 두고도 늘 컨트롤이 말썽이었다. 이름까지 장효훈에서 장시환으로 바꿔봤지만, 어둠 속에 갇혀있던 그에게 좀처럼 승리의 빛은 다가오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20인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 kt 조범현 감독은 볼을 던질까봐 위축돼 있던 그에게 오히려 “제구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볼 안 던지는 투수 있냐”며 자신 있게 던질 것을 주문했다. 정명원 투수코치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도록 투구시 뒷다리를 높게 들고 폼을 크게 하라”고 조언했다. 역발상의 시도. 장시환은 4월 22일 수원 SK전에 4회 2사 후 구원등판해 5.1이닝 무실점으로 생애 첫 승의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9년 만에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온 그는 이제 승리를 마무리하는 ‘마법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

김재윤은 휘문고 졸업반 때 프로팀의 외면을 받았던 포수다. 2009년 애리조나와 계약해 태평양을 건넜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다 2012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살기 위해 찾아갔던 미국에서도 버림받은 야구인생. 현역 입대를 했다. 그러나 끝까지 꿈을 놓지 않았다. 2015년 신인 지명에서 kt에 특별지명을 받아 기회의 문을 통과했다.

지난해 10월, 포수장비를 차고 훈련하던 그에게 조 감독은 “마운드에서 공 한번 던져봐라”고 말했다. 강한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장재중 배터리코치와 정명원 투수코치도 “포수보다는 투수 한번 시켜보자”며 의견일치를 봤다. 김재윤은 5월 중순부터 1군 마운드에 나타나더니 150km대 힘 있는 직구를 뿌리며 불펜 필승조로 포효하고 있다. 1월에 투수수업을 받기 시작한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역투다.

첫 울음은 아닐지라도, 오랜 세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매미들도 생겨나고 있다. 두산 시절 선발승이 단 1승밖에 없었던 좌완투수 정대현(24)은 지난달 28일 잠실 LG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생애 두 번째 선발승을 거뒀다. NC와의 트레이드로 kt 유니폼을 입은 오정복(29)은 23일 수원 LG전에서 1813일 만에 1군 무대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 감독은 kt 선수들이 훈련할 때 눈을 떼지 못한다. 엄상백(19), 조무근(24) 등 예상보다 빨리 허물을 벗어가는 어린 매미들도 있지만, 앞으로 더 울어줘야 할 굼벵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타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구에 강한 타자라도 각도 큰 변화구에 강한 타자가 있고, 짧고 빠른 변화구에 강한 타자가 따로 있다”며 오랜 세월 포수로, 배터리코치로, 감독으로 빚어낸 그만의 촉을 세우고 있다.

안도현 시인은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고 노래했다. kt의 봄은 추웠지만, 여름에 접어들면서 매미들의 합창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조갈량’이 뿌리는 마법 가루에 허술하던 kt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처음부터 우는 매미는 없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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