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김광현 빈 글러브 태그는 프로의 본능

입력 2015-07-1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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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광현이 9일 대구 삼성전 4회말 2사 2루서 박석민의 평범한 내야플라이 타구를 1루수 브라운이 원바운드로 잡았음에도, 빈 글러브로 홈으로 쇄도하던 2루주자 최형우를 태그해 아웃시킨 뒤로 논란에 휩싸여있다. 사진출처|KBSN 스포츠 방송화면 캡쳐

■ ‘속임수’는 야구의 기술…

안타 친 주자, 1루서 멈추는 척 속인 후 2루행
수비수, 공 못 잡은 것처럼 속인 후 주자 아웃…
인정 받는 야구 기술…부상 유발은 절대 금물
김광현 사과 기자회견했더라면 더 웃겼을 뻔


9일 대구 SK-삼성전 도중 나온 SK 투수 김광현의 ‘빈 글러브 태그’가 주말 동안 야구계를 뜨겁게 달궜다. 내용은 잘 알려진 대로다. 4회말 2사 2루서 삼성 박석민의 평범한 내야플라이 때 타구를 잡으려고 달려든 3명의 SK 수비수가 서로 양보하다 안타를 만들어준 뒤, 공은 1루수 브라운이 잡았는데도 김광현이 홈으로 뛰어들던 2루주자 최형우를 빈 글러브로 태그해 아웃 판정을 받아낸 것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해프닝이지만, 이 플레이를 놓고 야구계에선 다양한 해석과 담론이 오갔다.


● 갑자기 등장한 유령 태그라는 단어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김광현의 플레이를 ‘유령 태그’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럴 듯한 표현이지만 적용이 틀렸다. 폴 딕슨이 쓴 ‘야구 불문율’(The Unwritten Rules of Baseball)을 보면 유령 태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동료보호 플레이(Neighborhood Play) 대목에서 유령태그(Phantom Tag)가 등장한다.

야구가 격렬했던 과거에는 주자와 수비수 사이의 몸싸움이 심했다. 특히 주자가 병살을 피하기 위해 수비수를 방해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겨 문제가 됐다. 룰대로 하자면 병살 시도 때 수비수는 반드시 포스아웃이 되도록 선행주자가 뛰어드는 베이스를 찍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베이스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는 주자와 충돌해 다쳤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만든 것이 유령 태그다. 병살 시도 때 수비수가 2루나 3루를 정확하게 밟지 않아도 송구가 정확하고 수비수가 베이스 가까이 있어 타이밍 상 아웃이 확실하다고 판단할 경우, 베이스를 밟지 않아도 밟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 주자와 수비수의 속임수는 야구의 중요한 부분이다!

‘야구 불문율’은 경기 중 나오는 다양한 속임수의 사례도 들었다. ▲안타를 친 타자주자가 1루에 멈추는 척하며 수비수를 안심시킨 뒤 갑자기 2루로 뛰어가는 동작 ▲수비수가 공을 잡지 못한 것처럼 속인 뒤 베이스를 떠난 주자를 잡는 히든 볼 ▲송구가 오지도 않았는데 공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 상대 주자의 진루를 막는 속임수 동작 ▲송구가 날아오는데 마치 공이 오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천천히 오는 주자를 잡아내는 동작 등은 ‘야구의 기술’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야구 최고의 기술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최고 투수는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잘 빼앗고, 최고 타자는 상대 배터리의 생각을 읽고 어떤 공이 올지 예측해 타격하는 것을 잘한다. 도루는 물론이고 상대의 사인 간파하기 등 속이는 기술이 장려되는 것이 야구다. 흥미진진한 생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경기가 바로 야구다.


● 인정받는 속임수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속임수도 있다!

상대의 부상을 유발하는 속임수는 절대 금물이다. 1973년 벌어진 사례다. 피츠버그-샌디에이고전이었다. 피츠버그 1루주자는 진 클라인스. 다음 타자 때 4구가 나왔는데 1루주자가 볼카운트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 순간 샌디에이고 2루수는 땅볼 타구가 온 것처럼 속임수 동작을 했다. 그 사실을 모른 1루주자는 병살을 방지하려고 2루로 슬라이딩하다 큰 부상을 입었다. 안전진루권을 지닌 주자를 놓고 속임수를 써서 부상을 입힌 것이다.

2007년 5월 30일 토론토-뉴욕 양키스전 9회, 토론토가 7-5로 앞선 가운데 2사 2루였다. 2루주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A-로드는 호르헤 포사다의 내야플라이 때 3루로 뛰었다. 3루수 하위 클락이 타구를 잡으려는데 A-로드가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클락이 공을 놓치면서 득점이 이뤄졌다. A-로드는 “그냥 의미 없는 소리를 냈다”고 했지만, 클락은 “A-로드가 ‘마이 볼’이라고 외쳐서 동료 수비수가 잡는 줄 알고 미루다가 안타를 내줬다”고 주장했다. A-로드가 그 순간 어떤 소리를 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르지만, 이 행동은 문제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봤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상대를 존중하지 않거나 비신사적인 속임수는 비록 성공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한다.


● 마라도나가 만든 ‘신의 손’ 전설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1982년 포클랜드 섬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후반 6분 잉글랜드 골키퍼 피터 실턴과 1대1 경합을 하던 와중에 왼손으로 공을 건드려 골을 넣는 반칙을 점했다. 주심은 이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잉글랜드가 격렬히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당시 슬로모션에선 마라도나가 손으로 건드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비디오판독도 없던 때였다. 관중도 몰랐다. 경기 후 주심은 “상황을 선심에게 물어봤지만 손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득점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4분 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 선수 5명과 골키퍼까지 제치는 신기의 드리블로 추가골을 넣어 아르헨티나를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내 머리에 의해서 득점했다”고 말해 논란은 더 커졌다. 2002년 자서전에서 공을 손으로 건드렸다고 인정했지만, 그 골은 지금도 월드컵 역사에 남아있고 그를 둘러싼 논란 또한 월드컵의 역사다.


● 김광현의 플레이는 선수의 본능이었다!

김광현의 플레이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아마도 심판일 것이다. 명백한 오심이 됐다. 공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보지 않고 판정을 내렸다. 심판은 볼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는 가장 기본 수칙을 지키지 못했다. 빤히 앞에서 벌어진 플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삼성 덕아웃 안에 있던 사람들도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혹자는 김광현의 ‘양심선언’을 말한다. 선수 스스로 빈 글러브 태그였다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게시판의 반응을 보고 SK 프런트에서 한때 김광현의 사과 기자회견을 염두에 뒀을 정도이니, 해프닝 직후 많은 사람들의 뜨거웠던 반응과 생각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만일 SK가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더 웃길 뻔했다. 야구는 야구일 뿐인데 경기 도중 나온 행동을 두고 사과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야구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플라이 타구가 나오면 누구라도 먼저 뛰어가서 잡고, 곁에 주자가 있으면 태그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배운다. 빈 글러브로도 습관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 프로선수들의 그런 행동은 본능일 뿐이다. 당시 공이 글러브에 있는지 없는지는 선수 본인만이 알 뿐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모를 수도 있다.

눈앞에서 득점을 하려는 상대팀 주자가 보이면 태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나머지는 심판과 상대팀의 몫이다. 애매모호한 상황이면 공을 보여달라고 하면 됐고, 어필할 시간도 충분했다. 김광현의 행동을 양심불량이라고 말한다면, 경기 도중 나오는 수비수들의 수많은 위장 동작에 대해 모두 사과해야 하고 야구는 양심불량의 경기가 된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경기를 하다보면 피치 못할 상황에서 상대도, 심판도 속인다. 이는 양심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간혹 스포츠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두고 누구의 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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