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생활체육 특강] 큐의 미묘한 각도 차이에 그날의 당구비가 달려있다

입력 2015-07-3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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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받아온 대중적 스포츠다. 2009년 전국체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당구선수 육성에도 탄력이 붙었다. 단순한 오락을 벗어나 정신건강에도 이로운 스포츠라 점차 팬층이 확대되고 있다. 대구 서남중학교 학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당구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서남중학교

17. 당구

탄성·회전 등 과학적 원리 바탕 두뇌 게임
공이 명중할 때 희열…스트레스 해소 도움
당구 1시간 치면 1.5km 걷기 운동 효과도


한동안 어두운 뒷골목 무대로 비춰졌던 당구장이 새로운 스포츠 마당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09년부터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몇몇 고등(대)학교에선 당구선수를 육성하고 있고, 당구장 또한 금연운동까지 벌이며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 문화센터, 노인대학, 동호회 등에선 당구 강좌의 인기도 높다.

당구는 원래 중세시대 영국 귀족여성이 즐겼던 스포츠다. 셔플보드(shuffleboard·원판치기)나 크리켓(잔디에서 공을 밀어내는 놀이)에 유래를 둔다. 클레오파트라와 루이14세도 건강을 위해 당구를 쳤다는 기록이 있다. 당구는 단순한 오락을 떠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스포츠다.


● 고독한 황제를 달래준 옥돌대

귀족스포츠답게 당구는 우리나라에도 조선 왕실에 먼저 입성했다. 마지막 왕 순종 때 일본에서 주문한 2대의 옥돌대가 창덕궁 인정전 동행각에 설치되면서 당구가 소개됐다. 당시 순종은 나라 잃은 왕으로서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 동행각에 드나들며 옥돌(당구)을 즐겼다. 옥돌대와 마주한 오후 2시간 동안 순종은 비로소 처참하게 시해당한 어머니의 한과 강제로 폐위된 아버지의 한을 잊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리란 연민이 느껴진다.


● 서민들의 인생 친구로 자리 잡은 종목

귀족스포츠였던 당구가 민간에 전래된 것은 구락부(클럽의 일본식 발음)에서 외교관과 관계자들이 당구를 즐기면서부터다. 1920년대 초반 종로에 민간 영업장이 생기면서 유학생들과 주변 상인들 및 부호들로부터 시작해 점차 서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광복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당구는 대학생들의 ‘필수학점’(?)으로 간주돼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기 일쑤일 정도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으로 확산됐으며, 최근에는 여성들의 활동도 크게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때 PC방의 등장으로 잠시 뒷골목 신세도 졌지만, 당구장의 위상이 바뀐 지는 이미 오래다. 1993년 청소년출입제한지역에서 해제됐고, 1994년 체육시설업으로 인정받았다.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몇 년 전부터는 일부 고교와 대학에서 당구 전공 학생을 모집하고 있고, 중·고교 특별활동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장비를 직접 사면서 깊이 빠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즐기는 수준으로 한다면 당구는 큰 경제적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다. 생활체육으로 사랑받는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처럼 체력적 부담이 크지 않고, 골프처럼 경제적 부유함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당구 경기는 크게 캐롬(carom)과 포켓(pocket)으로 나뉜다. 막힌 당구대에서 펼쳐지는 4구, 3쿠션 등은 캐롬 게임에 해당되며, 당구대 모서리에 뚫린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풀(pool)과 스누커(snooker)는 포켓 게임에 속한다. 우리나라에는 캐롬 경기에 더 많은 애호가들이 있다.


● 백구와 적구의 키스 속의 과학


근대 당구의 일대 혁명은 19세기 2개의 조그만 발명품, 초크와 큐팁이 개발돼 당구공의 급소를 제압하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공을 굴리는 수준이었지만, 이들을 통해 공을 회전시킴으로써 밀어 치기, 끌어 치기, 비틀기 등의 어려운 기술이 등장해 커다란 돌풍을 일으켰다. 횐 공과 붉은 공의 충돌 이후 또 다른 붉은 공과의 충돌을 보면 수학과 물리를 섞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의도대로 공을 움직이게 하려면 흰 공을 칠 때마다 탄성, 회전, 힘 등 여러 과학적 원리를 염두에 둬야 한다. 또 경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큐 스트로크 기술과 전략은 충분히 두뇌 게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사격이나 양궁에서 목표물 조준에 집중하는 것처럼 당구에선 큐 스트로크의 당점(큐로 공을 때리는 지점)과 두 공의 충돌 두께에 집중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정지된 이후 두 공의 위치가 어느 곳일지를 미리 계산하면서 경기해야 하므로 체계적 전략도 필요하다. 배운 대로 스트로크하면서 점차 나만의 큐 스트로크 루틴을 만들어가노라면 재미를 넘어 한 단계 향상된 실력도 맞볼 수 있다.

명쾌한 충돌 소리와 함께 공이 명중했을 때는 희열감에 스트레스도 바람처럼 사라진다. 당구는 정신건강에도 좋지만, 2m가 넘는 롱레일 당구대에서 1시간 정도 당구를 치면 1.5km 정도를 걷는 효과가 있어 신체건강에도 별 3개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다. 또 2시간 정도의 당구 활동은 남자 572.2칼로리, 여자 654.8칼로리 정도의 열량소모가 있다. 이러한 수준은 장시간, 중강도의 운동으로서 소비열량 측면에서 효과적 운동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당구비는 올바른 자세에 달려있다!

당구는 배우기도 쉽다. 엎드렸을 때 큐의 앞뒤가 수구(큐로 처음 치는 공)의 당점과 두 눈 사이에서 일직선상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 당구는 지름이 약 6cm밖에 안 되는 그 작은 공안에서도 1도의 미묘한 각도 차이에 따라 그 날의 당구비가 결정될 정도로 많은 변수가 숨어있다. 따라서 수구를 칠 때마다 전략을 세워야 하고, 여러 과학적 원리를 게을리 하면 당구비는 나의 몫이 되고 만다. 이런 지적인 매력으로 국내에만도 약 1200개의 클럽과 약 4만2000명의 동호인들이 활동 중이다.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www.billiard.or.kr)를 통해 다양한 당구 관련 정보와 동호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스포츠과학실 수석연구원
최규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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