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챌린지 최다 골 고경민 “88만원 세대 청춘이 날 만들었다”

입력 2015-08-20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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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천유나이티드 추가번외지명, 2경기 출장 0골. 그리고 방출’


[동아닷컴]


지난주 K리그 챌린지 통산 최다 골을 기록한 FC안양 고경민의 청춘은 상처로 가득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대학교에 진학해서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0년 드래프트 장에서 고경민의 이름을 불러주는 프로팀은 없었다. 낙담했으나 무릎 꿇진 않았다. 축구화를 신었으면 프로의 문턱이라도 가는 것이 축구 선수로서 작은 성공이자 목표였다. 그래서 다른 기회를 노렸다. 두드리면 문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프로 입단 테스트를 위해 축구화 하나만 들고 일본까지 날아갔다. 에이전트가 주선해서 가긴 했으나 느낌이 말 그대로 테스트를 위한 테스트였다.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일본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2010년 테스트를 통해 운이 좋게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누구처럼 화려한 입단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신문 한 켠에 이름이 실리지도 않았다. 연봉 1천 2백만 원, 세금 제외 월 90만원을 받지 못하는 계약이었다.


에이전트가 구단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다른 말없이 ‘고생했다’는 묵직한 한마디만 남겼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제 꽃이 피나 싶었다.

곧바로 시련이 왔다. 꽃이 지는 건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테스트를 통해 좁디좁은 프로의 문을 통과했으나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당시 인천에는 스트라이커 유병수,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인정받은 강수일, 그리고 외국인 공격수까지... 번외 지명으로 입단한 월급 88만원을 받는 선수가 넘어야할 산은 너무 커보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해 9월 가정을 책임지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위암이란 것을 알았을 땐 말기 4기였다. 손을 쓸 틈도 없이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 곁을 떠났다.


너무 힘들었다. 마음에 병이 들었는지 갑작스레 햄스트링에 부상도 찾아 왔다. 거기다 몇 달 뒤 자신을 뽑은 감독도 교체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프로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할 수만 있다면 2010년은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한 해였다.

축구화를 신은 후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다. 월 90만원으로 가족을 이끌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타 프로팀의 테스트를 볼 수도 있었지만 고만고만한 연봉을 받아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향한 곳이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이었다. 꿈을 포기한 가장이 돈을 찾아 간 곳. 하지만 안일했다. 주전이 보장될 것 같았으나 9경기를 뛰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실력 발휘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감독님의 구상에서 벗어났다. 또 1년이 되지 않아 다른 팀을 알아봐야했다.

2012년 다시 팀을 옮겼다. 이번엔 용인시청이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때는 프로 선수로써의 꿈, 가장의 책임감보다는 다시는 축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축구화를 신고 뛰는 마지막 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온전히 본인을 위해서만 축구를 했다. 운도 따라서 한 해 20골이 넘는 골을 넣었고 대학 졸업 후 몇 년 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13년 FC안양이 창단되면서 이영민 감독대행이 함께하지 않겠냐고 제의가 왔다. 그때는 망설임이 없었다. 잊었던 프로의 꿈을 다시 펼칠 기회가 온 것이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도전하고 싶어서 바로 팀에 합류했다.

고경민 선수는 2013년부터 꾸준히 활약했고 지난주(15일) 경남 전에서 한 골을 추가해 K리그 통산 최다골(32골)을 경신했다. 이제야 프로선수라는 것을 조금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먼 것도 잘 알고 있어서 매일을 채찍질하면서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K리그 통산 최다 골을 경신한 고경민 선수는 “기대하던 프로팀 인천에 입단하고 4월 11일에 데뷔전을 치렀다. 그때가 내 생일이었는데 너무 기뻤다. 근데 기쁘기만 했지 그게 일생일대의 기회인지는 몰랐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보이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은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다른 곳에서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 당시 너무 좌절하고 마음이 아팠다. 좌절하면 또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나도 당연히 그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문이 열리더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운이 따라서 K리그 챌린지 최다 골을 경신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지만 월급 90만원이 되지 않는 돈을 받는 시기가 있었고, 축구를 아예 하지 못 하겠다는 위기감에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때의 힘들었던 청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라운드에서 좀 더 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FC안양 주장 고경민은 지난 2013년 프로에 입단해 2015년까지 총 32골을 터트려 K리그 챌린지 통산 최다 골을 경신한 바 있고, 공격포인트 3개를 추가하면 K리그 챌린지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41포인트)도 경신하게 된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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