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피칭은 비빔밥…수비는 어머니 손맛

입력 2015-09-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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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선제 투런포 SK 선수들이 6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넥센전 1회말 최정이 2점홈런을 터트리고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함께 기뻐하고 있다. 문학|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야구는 요리다

‘감독’은 좋은 재료를 찾아내는 장인
풍부한 맛을 내게하는 육수는 ‘작전’

롯데에 2번의 우승을 안겼던 강병철 전 감독은 “요리사인 감독의 능력이 뛰어나도 선수인 재료가 좋지 못하면 음식의 맛이 좋아질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을 요리사에 비유하면서 감독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제 아무리 유명한 요리의 명인이라도 나쁜 재료를 가지고 상상도 못할 맛과 요리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성공한 요리사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최고의 재료를 찾는 힘든 과정부터 겪는다. 달인의 요리와 보통 요리의 차이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궁극의 맛을 찾아내느냐에 있다.

요즘 갈수록 야구 꿈나무가 줄어들고 좋은 재목도 드물다고 한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 한 가정의 출산비율이 1.5명 미만으로 떨어진지 오래다. 게다가 운동은 힘들다. 돈도 많이 든다. 가족의 희생도 요구한다. 또 최고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의 사례지만, 야구 꿈나무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될 확률은 고작 1.1392%에 불과하다. 또 이 가운데 10%의 선수만이 단 한 번이라도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는다. 우리는 그보다 높은 확률이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아이가 야구를 좋아해서 한다고 해도 걱정이 앞설 정도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KBO리그의 선수가 될 확률은 사법고시 합격률보다 낮다”는 말도 나온다. 이러니 기를 쓰고라도 운동을 말리게 된다.


● 감독은 좋은 재료를 찾아내는 장인, 그리고…

앞으로 모든 팀과 감독의 과제는 좋은 재료를 많이 찾아내서 꾸준히 공급해내는 시스템을 갖추느냐 못하느냐에 있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현실에서 감독의 성공 여부는 가능성 있는 선수를 잘 찾아내는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 관찰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원하는 성적을 내기 위해선 감독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프런트의 역량이 감독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고, 가진 능력을 묻히게 할 수도 있다. 2군에서의 체계적인 육성과 싹수 있는 신인 지명, 다른 팀에 묻혀있는 재목 찾기가 감독을 명장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좌우한다.

물론 구단이 제 아무리 좋은 자원을 뽑아줘도 감독이 그 가치를 모르거나 제대로 손질해 쓰지 못한다면 헛일이다. 요리는 ‘불의 마술’이라고 한다. 강병철 전 감독의 말대로라면 감독은 좋은 화덕이 되어야 하고, 불의 뜨겁기를 잘 조절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팀이라는 냄비 또는 프라이팬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어떤 불로 요리하느냐가 감독의 진정한 역량이다. 올 시즌 실패한 몇몇 팀은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상에 수많은 요리사가 있지만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사람은 몇 되지 않듯, 감독도 마찬가지다. 모두 비슷한 일을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을 잘 골라야 구단의 미래 또한 밝다. 올 시즌 후 새 사령탑을 원하는 구단이 있다면 잘 생각해볼 대목이다. 구단이 다루기 좋은 사람, 윗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주로 낙하산)을 선택하면 또 다시 실패한다. 현재 팀 구성원의 능력을 고려한 장단점과 구장 요소, 팬들의 선호도, 팀이 추구하는 야구를 종합한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것을 잘할 요리사를 골라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 피칭은 재료의 조화로 맛을 창조하는 비빔밥

1995년 한·일 슈퍼게임 때다. 해태 이대진이 대표로 뽑혔다. 그해 탈삼진왕 이대진의 강속구는 싱싱했다. 0-4로 패한 4차전과 3-8로 진 6차전에서 이대진은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결과가 좋지 못했다. 빠른 공으로 일본 타자들을 윽박질렀고, 감히 손도 못 댈 공도 던졌지만 안타를 많이 맞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일본의 전문가는 “공 하나 하나는 좋지만 모아놓으면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자는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런 뜻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 비빔밥은 밥과 다양한 고명, 고추장, 참기름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다. 수많은 재료를 하나로 섞으면 개성이 사라지고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나오기 쉽지만, 비빔밥은 재료 각각의 특성을 살려주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다. 비빔밥의 고명을 피칭으로 비유하면 이대진이 타자를 쉽게 잡지 못한 이유가 짐작된다. 고명 한 두 개의 맛이 엄청나게 좋다 하더라도 최고의 비빔밥이 되려면 이들이 골고루 맛있게 섞여서 밥, 참기름, 고추장과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대진의 어떤 공은 타격의 신도 치지 못할 정도로 좋았지만, 어떤 공은 홈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타자가 안타나 홈런을 만드는 공은 투수가 잘 던진 공이 아니다. 대부분이 실투다. 엄청나게 좋은 공보다는 실투를 얼마나 줄이고 이들을 잘 조합해 범타를 유도하느냐가 피칭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 수비는 수많은 반복훈련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어머니의 손맛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실향민들에게 ‘고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을 묻자 대부분이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음식”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입이 오랜 기간 그 요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야구는 몸의 기억이 중요한 요소다. 공·수·주 가운데 특히 수비는 몸의 기억을 필요로 한다. 100%를 추구하는 수비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이 본능적으로 타구를 따라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수비는 처음 동작을 배울 때 좋은 자세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야구인들이 항상 말하는 튼튼한 기초다. 좋은 자세는 한 번 익혀두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타격은 성공 확률이 3할로 낮고 정상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등 불확실성이 높지만, 수비는 다르다. 궤도에 오르면 98∼99%의 높은 성공률이 보장되고 변화도 적다.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반복훈련을 통해 가장 빨리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수비다.

메이저리그에선 “팀을 단시간에 변화시키고 싶다면 수비를 강화하라”고 한다. 수비는 지루하고 힘들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난다. 최고의 수비를 위해 흘린 땀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쏟은 정성과 노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경기에선 같은 효과를 준다.


● 작전은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맛의 육수가 중요한 평양냉면


평양냉면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밋밋한 맛에 실망하다가 다시 찾는다. 확 와 닿지는 않지만, 은근함이 감도는 이런 맛을 깊은 맛이라고 부른다.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육수의 풍미다. 뭔가 모를 깊이가 들어 있다. 그 차이에 사람들의 선호도도 갈린다.

야구에는 수많은 작전이 있다. 140여년 역사의 메이저리그를 시작으로 다양한 수준의 많은 리그에서 수많은 경기를 통해 엄청난 상황이 나왔다. 모든 경기가 다 같지는 않겠지만, 감독의 천재적 능력을 보여주는 놀랄 만한 작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관중조차 특정 상황에선 어떤 작전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결국 성공한 작전과 실패한 작전의 차이점은 벤치의 신출귀몰한 작전 지시가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에 선수들이 얼마나 적절하게 이를 실행하느냐의 여부다.

수많은 냉면에서 육수의 맛이 천양지차인 것처럼 작전도 같은 모양새지만 깊이는 다르다. 육수를 더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조미료나 인스턴트 첨가물을 넣는 사람도 있다. 당장은 맛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작전도 그렇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벤치가 그 순간 가장 보편타당한 선택을 적절한 타이밍에 내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인스턴트 맛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고 이를 통해 성공하는 인스턴트 리더를 추종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 우리의 야구 깊이도 그만큼 없다. 우선의 자극에 현혹되지 말고 깊은 맛을 봐야 야구가 더 재미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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