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그로저(맨 뒤 왼쪽). 사진제공|삼성화재 배구단
흔히 대기록은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나온다고 한다. 몸이 찌뿌듯하거나 선수 스스로 최고의 몸 상태가 아니라고 걱정하는 날 의외로 대기록이 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그런 날일수록 선수들이 평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한다. 몸 상태가 좋으면 자신을 믿고 성급하게 상대를 누르려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17일 KB손해보험과의 4라운드를 앞두고 삼성화재는 걱정이 많았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유럽예선을 마치고 12일 귀국한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그로저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13일 우리카드전에서 풀세트까지 버티며 팀에 승리를 안겼지만, 아직 시차적응이 문제였다. 하필 17일 경기는 오후 2시에 벌어졌다. 독일시간으로는 새벽 6시. 경기준비 과정까지 생각한다면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비몽사몽 중에 움직인 것과 다름없었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도 이를 가장 염려했다. 1세트 그로저의 첫 번째 공격을 KB손해보험 김요한이 유효블로킹으로 막아냈다. 이 때만 해도 삼성화재는 우리카드전의 악몽을 떠올렸지만 처음 서브권을 잡은 그로저가 걱정을 쉽게 날려버렸다. 5-3에서 3연속 서브로 KB손해보험의 리시브를 흔들었다. 14-10에서 맞은 서브 기회에서 또 3연속 서브를 성공했다.
2세트도 그로저의 서브는 봇물처럼 다시 터졌다. 4개의 서브가 나왔다. 속수무책이었다. 3·4세트에도 그로저의 서브 차례가 오면 KB손해보험에는 공포가 감돌았다. 평소보다 몸이 무거웠던 그로저의 공격성공률은 46.29%에 그쳤다. 평소보다 떨어졌다. 그러나 서브로 돌파구를 찾았다. 배구에서 서브는 유일하게 혼자서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가장 완벽한 공격은 혼자서 서브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로저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경기 후 그로저는 “1·2세트는 그런대로 몸이 좋았는데 3세트부터는 힘들었다. 시차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등 컨디션은 나빴다. 오늘 우리 리시브가 흔들려 세터 유광우가 많이 뛰어다니느라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유광우에게 여유를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로저 없이 치른 경기에서 1승2패, 그로저와 함께 3승을 거두며 4라운드를 4승2패로 마감한 삼성화재는 이제 목표를 우승으로 수정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