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김현수(오른쪽에서 2번째)가 5일(한국시간) 오리올파크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훈련 직후 사인을 요청하는 현지 팬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볼티모어(메릴랜드 주)|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볼티모어 김현수(28)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돼 개막전에 참가한 날, 말을 아꼈다. 두산 시절 거침없고 재기 넘치는 화법을 구사하는 그의 스타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의기소침이었다. 그 조심스러움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아프게 다가온 것은 5일(한국시간) 캠든야즈에서 김현수를 지켜본 기자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김현수는 “(후보 선수로 개막을 맞은 현실에 대해) 벤치에서 배워야지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조용히 말했다. 마이너 거부권을 행사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어땠는지를, 미래를 얼마나 힘겹게 견디고 있을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국의 타격기계가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고 걷는 현실은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생소했다. 마이너로 보내려던 김현수를 마지못해 남겨둔 볼티모어는 김현수를 완전히 후보 선수 취급했다. 주전급 타자들이 타격연습을 할 때 김현수는 좌익수 포지션에서 날아오는 타구를 잡는 훈련을 했다. 곁에서 잠깐 수비코치가 캠든야즈에 관해 몇 마디 조언을 해줬다. 캐치볼을 할 때 팀 동료는 ‘한국에서 온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라’며 김현수를 돌려세웠지만 어색하게 웃기만 할뿐이었다. 김현수 곁에는 통역 대니 리가 의지할 유일한 대상인 것처럼 보였다.
타격훈련 중간, 잠깐의 휴식시간에 본부석 맨 앞자리에 자리 잡은 볼티모어 팬들이 김현수에게 사인요청을 해왔다. 김현수는 성실히 응해줬다. 그러나 정작 개막전 세리머니인 볼티모어 선수 소개 때 김현수의 이름이 호명되자 캠든야즈에는 야유가 울려 퍼졌다. 기립 박수를 받은 벅 쇼월터 감독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김현수의 경쟁자 조이 리카드는 이날 4타수 2안타로 관중들의 기립박수까지 받아 분위기가 더 힘들어졌다. 한국 팬들은 ‘김현수가 볼티모어의 부당한 외압에 맞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다’고 지지하지만 정작 볼티모어 홈 팬들은 ‘김현수가 개막 25인 로스터에 들어간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김현수가 마음 편히 이름에 걸맞은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지 막막한 예감이 들었던 볼티모어 개막전의 풍경이었다.
볼티모어(미국 메릴랜드 주)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