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해어화’ 한효주라는 이름의 꽃

입력 2016-04-20 16:28: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해어화(解語花)’.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이자 예인을 일컫는다. 이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 ‘해어화’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1943년 비운의 시대, 최고의 가수를 꿈꿨던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캐릭터들도 꽃을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한효주가 연기한 기생 ‘소율’은 가시꽃 같은 연희(천우희)와 달리 봄날에 핀 복사꽃 느낌으로 설정됐다. 소율의 의상은 탐스러운 작약을 콘셉트로 제작됐다.

그래서 한효주에게 물었다. 소율처럼 자신을 비유할 한 송이 꽃을. 한효주는 한참을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답을 내놨다. 그가 빗댄 꽃은 장미도 백합도 아닌, 라넌큘러스였다.

미나리 같은 소박한 줄기를 가졌지만 꽃은 장미처럼 화려하게 피우는 라넌큘러스. 수백장의 탐스러운 꽃잎이 아름답게 포개진 이 꽃은 겉만 보면 여린 느낌이라 정원에 필 것 같지만 연못이나 습지에서 서식하는 식물이다. 생각해보니 꽃말도 한효주스럽다. 또래 여배우 사이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분위기를 지닌 한효주처럼 라넌큘러스의 꽃말은 ‘매혹’과 ‘매력’이다.


Q. 라넌큘러스를 꼽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처음에는 안개꽃을 떠올렸어요. 품에 한다발 안았을 때 초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모습이 저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음…. 라넌큘러스는 꽃잎 색깔만 보면 연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겉보기와 다르게 이 많은 꽃잎이 중심을 ‘보호’하고 있죠. 꽃잎을 떼고 떼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요.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모습이 저 같아요.


Q. 어쩌면 ‘해어화’ 속 소율과도 비슷합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어땠나요.

A.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영화를 위해서 지난해 1년을 올인하다시피 쏟아 부었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없어요.


Q. 직접 부른 정가(正歌)가 상당히 인상적이더라고요.

A. 되게 생소한 장르의 노래죠. 우리나라 성악곡인데 저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어요. 정가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컸어요. 연습한 것에 비해서는 영화에 적게 나왔지만 열심히 연습했어요. 제가 다 직접 불렀죠. 당시 양반들도 정가를 수련하듯이 배웠대요. 그래서 정가를 수련곡이라고도 하죠. 저에게도 딱 맞는 수련곡이었어요. 정가를 부르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더라고요.


Q. 발성과 호흡이 기존과 달라서 익힐 때 어렵지 않았나요.

A. 이론적인 부분부터 오랜 기간 배웠는데 힘든 점도 있었지만 되게 즐거웠어요. 원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배우면서 실력이 늘면 성취감도 느끼고 기분도 좋고요. 정가의 악보가 있는데 그것까지 간파하지는 못했어요(웃음). 오선지에 음을 표기해서 외우는 식이었죠.


Q. 평소에도 노래를 즐겨 부르는 편인가요.

A. 원래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해요. 일상에서는 큰 소리 낼 일이 없잖아요. 노래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요.


Q. 지난해 ‘쎄시봉’에 이어 이번에도 음악 영화인데요.

A. ‘쎄시봉’에서는 제가 음악적으로 뭘 했다고 할 수는 없고요. 이번 작품은 제가 잘 해내야 하니까 부담감이 컸어요. 그래도 도전할 거리가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배워나가는 과정이 있으니까요. 제가 찾아서 하는 것보다 할 게 정해져 있다는 게 좋아요.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도전할 거리가 있는 배역을 더 선호하나요.

A.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배우면 작품을 하고나서도 남는 게 생기니까 좋더라고요. 일하는 게 워낙 치열하다보니까 쉬는 시간에는 어떤 것이든 치열하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일해야 해서 배우는 것은 치열하게 하게 되죠. 정가는 작품을 찍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에 남아요. 일하기 위해서 ‘하는 것’에는 집중력이 높은 것 같아요.


Q. 그런 차원에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A. 발레리나? ‘블랙 스완’ 같은 작품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용을 배우거든요. 현대무용을 접목한 스트레칭을 꾸준히는 아니지만 배워왔어요. 2년 전부터는 다리 찢는 게 목표였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작품에서 다리를 찢어야 한다면 찢겠죠(웃음).


Q.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한 한효주-천우희-유연석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으로 화제가 됐는데요.

A. ‘뷰티 인사이드’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 한풀이를 한 느낌이에요. 천우희 씨와는 ‘뷰티 인사이드’에서 연인이기도 했는데 짧아서 아쉬웠거든요. 또래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같이 작품을 했던 배우들이라 더 편했어요. 선배들과 연기할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죠.


Q. 동갑내기 천우희와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A. ‘한공주’를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 한 번 좋은 배우라고 느꼈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가 될 것 같아요. 연기할 때 보면 힘이 있어요. 화력이 좋은 불같아요. ‘액션’ 소리를 들으면 확 불이 붙어서 힘 있게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부러웠어요. 저는 슬슬 달궈지는 스타일이거든요. 촬영 내내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어요. 현장에서 이야기는 자주 나눴지만 캐릭터의 관계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 ‘선’을 지켜는 느낌이었죠. 촬영 끝나고 나서 많이 친해졌어요.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극 중 둘도 없는 절친에서 대치 관계가 되니 알겠더라고요. 그만큼 소율은 캐릭터적으로 변화가 많은데 어떻게 연구했나요.

A. 초반과 후반의 소율의 감정 변화도 크고 얼굴도 많이 다르죠. 초반의 소율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죠. 처음부터 소율이 이성적이고 성숙한 인물이면 그렇게 후반부에 한번에 변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제 생각에 소율은 악역은 아니에요. 본질적으로 나쁜 아이가 아니거든요. 배려도 많이 하는 선한 아이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그 운명에 의해서 변하는 거죠.


Q. 소율에게 많이 공감했나요.

A. 공감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후반부에 광기 어린 느낌으로 변하는 과정보다 이전의 순수한 모습을 연기하기 더 어려웠어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위해서 비워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Q. 극 중 소율은 친구도 잃고 사랑도 흔들립니다. ‘사랑의 약속’이 깨진다면 실제 한효주는 어떻게 대처할까요.

A. 지금까지 겪어 본 적도 없고 겪고 싶지도 않네요. 상상조차 안 돼요. 지금의 저라면 포기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남자도 친구도 체념해야겠죠.


Q. ‘해어화’는 사랑뿐 아니라 개인의 ‘질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잖아요.

A. 사랑만큼 질투도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그리고 누구나 느낄 수 있죠. 저도 연기 잘하는 배우를 보면 ‘진짜 잘한다’ ‘부럽다’하면서 질투 나요. 그래도 저를 남과 비교하면서 질투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느낌이 들 때는 그 시작점에서 감정을 잘라버려요. 나를 괴롭게 하는 감정이니까. 그래서 빨리 포기하고 좋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소율이 더더욱 안타까웠죠.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해어화’에서 그리는 예술가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와도 많이 닮았어요.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어떠한가요.

A. 어려워요. 예술가라는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이 위대한 것 같아요. 저도 예술가이고 싶은데 예술가일 수가 있을까요. ‘과연 내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싶어요. ‘진정한 예술은 뭘까’라는 고민도 해요. 저와 거리가 멀 것 같은 느낌이에요.


Q. 연기자로서의 추구하는 본질은 뭔가요.

A. 연기 잘하는 것이죠. 저도 ‘연기를 잘하는 것’이 뭔지 찾아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 사람 연기 참 잘한다’고 하는 그 의미가 뭘까. 저도 궁금해요. 잘하고 싶어요.


Q. 그 ‘잘한다’는 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연기는 아닐텐데요.

A. 그렇겠죠. 배우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게 되잖아요.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지만 운명처럼 만나서 그 사람을 연기하죠. 저에게는 연기하는 인물이 아니라 진짜 있는 사람들 같이 느껴져요. ‘나’라는 몸을 통해서 그를 표현하는 거죠. 나를 빌려주는 느낌이랄까. 그 사람들을 잘 담을 수 있게 저 스스로가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흔히들 ‘비우고 채움’이라고 하는데 저도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캐릭터를 채우고 나면 비우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잘 비워야 다음 것을 잘 담을 수 있겠죠.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여배우 영화가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다행히 꾸준히 작품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A. 저에게 그런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만큼 부담이 많이 되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제는 단순히 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내 것’만 봐서도 안 되더라고요. 작품을 촬영할 때의 태도도 조금 더 챙기려고 해요. 많은 사람의 열정과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인 걸 아니까 홍보할 때도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그런 것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과정이에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