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범을 준비하고 곡을 쓰는 과정에서 제임스가 다쳤어요. 그때는 ‘대체 이를 어떻게 하나’ 싶었죠. 활동이 힘들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막막했어요. 다행히도 제임스가 잘 견뎌줬어요. 베이스에서 신디사이저로 악기를 바꾸긴 했지만 같이 활동할 수 있어 좋아요.” (문 킴)
사고는 불의의 순간에 찾아왔다. 로열파이럿츠(문 킴, 액시, 제임스 리)의 막내 제임스는 중식당 입구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멀쩡하던 출입문이 제임스를 향해 쓰러졌고, 무거운 철골과 유리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면서 부서진 유리 파편과 철골 기둥이 제임스의 왼쪽어깨와 손목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다.
“8시간 넘는 손목 접합수술을 받았어요. 의료진이 의수 착용을 권했지만 저는 거부했어요. 의수를 착용하면 하고픈 음악을 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재활하는 과정이 엄청 힘들었어요. 수혈을 받기도 하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티기도 했죠. 아직도 통증과 외상후스트레스가 있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전혀 후회 안 해요.” (제임스 리)
베이스 기타는 양 손으로 연주해야 하는 악기다. 부상 당한 손으로는 기타를 칠 수 없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절망 속에 빠져있던 제임스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베이스 대신 새로운 악기를 접했다.
“기타를 잡을 수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음악을 해야할까 싶었죠. 그래서 베이스 대신 신디사이저를 택했어요. 솔리드 정재윤 씨의 추천도 있었고, 문과 액시도 조언해줬어요. 사고 당시에 멤버들이 첫 병문안을 와서는 ‘그럼 이제 키보드 치면 되겠네’ 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웃음)” (제임스 리)

밴드 음악에서 베이스는 기본 뼈대를 이루는 역할을 한다. 베이스의 유무에 따라 곡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 베이스를 내려놓은 제임스만큼이나 멤버들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본인이 가장 힘들었겠지만, 우리도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도 제임스가 재활을 하는 동안에 곡 작업은 계속했어요. 어떻게 하면 베이스 없이도 우리의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베이스 대신 신디로 음악적 조합을 찾는데 힘을 기울였어요. 그 결과물이 최근 앨범에 많이 반영됐어요.” (액시)
최근 발매한 앨범 ‘3.3’은 로열파이럿츠의 실험적인 음악이 그대로 반영됐다. 세상 어디에도 들어본 적 없는 색다른 사운드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에 리스너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로열파이럿츠의 음악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의 리뷰글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물론 ‘3.3’도 좋았지만 음악적으로 완전 백퍼센트 만족하는 앨범은 아니었거든요. 그 당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팬들이 앨범을 듣고 좋아해주니까 힘이 나요. 팬들과 평소에 SNS를 통해서 많이 소통하고 있어요. 팬카페에서도 가입인원이 늘어나면 활발하게 글을 남기고 싶어요. 솔직히 사고 후에 SNS에 나쁜 이야기가 담길까봐 걱정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좋은 소식만 전해드려야죠.” (문 킴)
사실 로열파이럿츠가 하는 음악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다. 정확한 장르로 특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에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로열파이럿츠는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 사이에서 고민할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련되고 유니크하면서도 트렌디한 음악으로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곡을 만들었을 때 나보다 남이 좋다고 할 때가 더욱 좋더라고요. 하지만 그 조합을 찾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음악적 유행이 금방 변하는 만큼이나 리스너들의 음악적 취향도 다양해지고 있으니까요.” (액시)

로열파이럿츠는 음악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문 킴은 최근 KBS ‘연예가중계’에서 리포터로 활약했다. 제임스는 DDP에서 열린 패션위크에서 모델로 나서며 런웨이를 빛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딴따라’에서는 멤버 전원이 카메오로 등장해 연기자 신고식을 치렀다.
“TV 드라마에 우리의 목소리와 모습이 나왔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어요. 짧은 회상신이다보니 분량이 적었지만 출연한 것 자체가 영광이죠. 극중 라이브 장면을 위해 녹음 하는 데만 3시간 넘게 걸렸어요. (웃음) 우리를 아는 분들이라면 ‘RP 나왔네’ 하시겠지만 아직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좋은 기회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다 출연하고 싶어요.” (제임스 리)
차기 앨범을 준비 중인 로열파이럿츠는 하반기 컴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그들은 외장하드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음악들을 팬들에게 들려줄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난다.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과 역경은 로열파이럿츠에게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 ‘역경을 극복했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아직까지도 역경이고, 하루하루가 싸움이죠. 여름이나 늦어도 9월에 새 앨범이 나올 것 같아요. 한창 뜨거울 때죠. 곧 폭발할 것 같은 밴드, 활화산 같은 밴드가 되고 싶어요. 외장하드에서 만들어놓은 곡들을 하나씩 들려드릴게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애플오브디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