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우완투수 맷 부시는 2004년 메이저리그(ML) 신인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샌디에이고에 지명됐던 기대주다. 그러나 음주운전 등 각종 사고를 저지른 탓에 지난해까지 ML에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14일 글로브라이브파크에서 토론토를 상대로 12년 만에 ML 데뷔전을 치렀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잦은 음주 끝에 3년 간 감방살이
우여곡절 텍사스 입단…재기 노력
토론토전 1이닝 1K 화려한 데뷔
‘탕자’가 돌아왔다. 지난 2004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되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맷 부시(30·텍사스 레인저스)가 무려 12년 만에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14일(한국시간) 텍사스의 홈구장인 ‘글로브라이프파크’에는 4만322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홈팀 텍사스 타자들이 토론토 블루제이스 선발투수 RA 디키의 꿈틀거리는 너클볼에 고작 3개의 안타만을 뽑아내는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지만, 팬들의 시선은 0-5로 뒤진 9회초 마운드에 오른 루키 우완투수에게 쏠렸다. 시속 97마일(156km)의 강속구를 앞세워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 MVP(최우수선수) 조시 도널드슨을 루킹삼진으로 처리한 부시는 호세 바티스타와 에드윈 엔카르나시온을 범타로 처리하며 홈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 삼진 아웃
미국은 음주운전에 매우 엄격하다. 주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0년 안에 3차례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삼진 아웃’이 적용된다. 특히 미국 시민권자가 아닐 경우에는 추방을 당하게 된다.
지난 1986년 2월8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부시는 2004년 신인드래프트가 끝나자마자 사고를 쳤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는 21세. 하지만 당시 18세였던 부시는 술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횡포를 부리다 체포를 당했다. 폭행에 미성년자 음주, 무단 침입, 명령 불복종 등의 죄가 적용됐다.
구단은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315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를 투자했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사고를 치는 부시를 2009년 2월 토론토로 트레이드했다. 만취 상태로 샌디에이고 고등학교 학생을 교내에서 골프 클럽으로 폭행하는 사고를 친 것이 결정타가 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후, 부시는 플로리다에서 파티에 참석했다가 만난 여인을 무자비하게 때려 바로 다음 날 토론토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세 번째이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가장 큰 사고는 탬파베이 레이스 소속이던 2012년 3월 22일에 벌어졌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72세 노인이 운전하던 모터사이클을 추돌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플로리다 주법보다 두 배 가량 높은 0.18이었으며, 사고를 낸 후 5km가량을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탬파베이의 앤드루 프리드먼 단장은 “부시가 레이스 구단에서 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천명했다.
● 재기의 몸부림
당초 내려진 형량은 51개월이었지만 부시는 3년 동안 감옥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낸 후 지난 겨울 석방됐다. 다시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오직 가족밖에 없었다. 향후 10년 동안 운전을 할 수 없는 30세 아들의 재기를 위해 아버지가 발 벗고 나섰다.
여전히 시속 90마일대 중반을 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입증시키는 게 과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테스트는 야구장 마운드가 아닌 부시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뷔페식당 주차장에서 열렸다. 출소는 했지만 여전히 집과 일터 외에 다른 곳은 갈 수 없었기에 내려진 고육지책이었다. 결국 그의 재능을 인정한 텍사스는 계약을 체결하고 로이 실버 마이너리그 코치에게 부시를 맡겼다. 실버 코치는 역시 음주와 코카인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시 해밀턴의 재활 과정을 도운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텍사스 산하 더블A 프리스코에서 부시는 17이닝을 소화했다. 볼넷 4개와 홈런 2개를 허용했지만 1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5세이브를 기록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재기를 위한 간절한 몸부림은 마침내 14일 이뤄졌다. 텍사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은 상대적으로 허약한 불펜 보강을 위해 부시의 빅리그 승격을 결심했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른 부시는 데뷔전에서 17개의 공을 던졌다. 그 중 8개가 전광판에 97마일로 찍혔다. 텍사스의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부시가 빅리그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러 매우 기쁘다. 어려운 상황에서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상대 중심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요리했다. 오늘 보여준 부시의 투구가 매우 자랑스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늦은 출발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는 1965년부터 시작됐다. 미래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 중 전체 1번으로 뽑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여겨지는 전체 1번 지명자 가운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은퇴한 선수는 스티브 칠콧(1966년)과 브라이언 테일러(1991년)가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시 역시 이 불명예스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시의 드래프트 동기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2004년 전체 2번으로 지명된 선수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33)다. 2011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MVP와 사이영상을 모두 차지했던 벌랜더는 빅리그 통산 159승을 따냈다. 지난해 KBO리그 KIA에서 3승을 따낸 험버는 3번으로 뉴욕 메츠에 지명됐다. 빅리그 통산 16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2012년 메이저리그 21번째 퍼펙트게임 달성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이밖에 뉴욕 메츠의 닐 워커(11번), LA 에인절스의 제러드 위버(12번), 미네소타 트윈스의 트레버 플루프(20번)와 글렌 퍼킨스(21번)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이제 부시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이력에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이라는 단 한 줄을 남겼다. 1993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 고졸 출신 유격수로 전체 1번에 지명되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먼 길을 돌고 돌아 텍사스의 불펜투수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부시는 “마침내 꿈이 실현됐다. 생애 첫 등판을 무실점으로 막았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MBC스포츠플러스 메이저리그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