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거인 박태종 “쌓아뒀던 숙제 끝낸 기분”

입력 2016-05-2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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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제가…’ 박태종 기수가 지난 21일 2000승의 대기록을 작성한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박 기수는 “말을 탈 수 있는 한 기수로서 경주로를 달리겠다”고 향후 목표를 밝혔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2000승 고지 밟은 ‘경마대통령’

아파도 말에 오르고 싶어…천직이라고 생각
기수가 되지 않았다면 포크레인기사 됐을듯
조교사 전직? 탈 수 있을때까지 기수만 생각


‘경마대통령’ 박태종이 전인미답의 2000승 고지에 오르며 한국경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 150cm의 아담한 키, 48kg이라는 몸무게이지만 그의 아우라는 거인의 그것보다 크게 느껴진다. 2000승을 달성해 크게 감동할 것 같았지만 지천명에 접어든 노장은 그저 담담해했다. 쉰이란 나이.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5시부터 경주마에 오른다. 술, 담배를 멀리하고 자기관리에 엄격했던 덕에 지금도 체력은 젊은 기수 못지않다. 박태종은 2000승에 대해 어떤 소회를 갖고 있을까.


-늦은 감이 있지만 2000승 달성을 축하한다. 큰 산을 넘었다.


“20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진 주위에서 ‘도대체 언제 달성하냐’라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정작 달성하고 나니 관심이 수그러지는 느낌이 든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상은 했지만, 정작 관심이 줄어드니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동안 대기록을 위한 마음고생이 많은 것으로 안다. 슬럼프도 있었는데.

“2000승에 가까워지자 오히려 마음이 초조해지고, 그런 와중에 주변의 기대감도 높아져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러다 슬럼프 끝자락에서 가까스로 1승을 거두자 다시 마음이 가벼워져 2000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마치 오랜 시간 쌓아뒀던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기수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기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포크레인기사 또는 택시기사 둘 중 하나가 됐을 거다. 실제로 기수생활을 하기 전에 잠시 몸을 담았기도 했다. 포크레인 기사에서 기수가 된 데는 이모부의 영향이 컸다. 우연한 기회에 이모부가 기수후보생 모집 포스트를 보고 기수생활을 권해 이 길로 들어섰는데 평생 직업이 됐다.”


-처음 말에 오를 때를 기억하나. 박태종에게 기수는 어떤 의미인가.

“처음 기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 순간부터 기수가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몇 번이나 크고 작은 사고로 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회복되면 다시 말에 오르고 싶어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기수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사랑하게 됐다. 이제 기수는 곧 박태종이다.”


-팬들이 박 기수를 ‘경마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지어줬는데.

“사실 좀 부담스럽다. 대통령이라는 게 최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데 나보고 대통령이라고 하니, 모범적으로 뭔가를 해야 될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내가 애착을 갖는 별명은 ‘따이종’이다. 친한 주변인들만 알고 있다. 1995년 인도아시아경마대회에서 2연승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도사람들이 나를 보고 ‘따이종’이라고 외쳤다. 박태종이란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해 ‘따이종’이라고 하더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주를 꼽아 달라.

“1999년 5월에 펼쳐졌던 코리안더비 대상경주다. 당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인 ‘자당’을 극적으로 추월하며 역전승을 일궜다. 그날은 아내와 딸이 처음으로 렛츠런파크 서울을 찾았다. 그 딸이 벌써 고등학생이 됐다.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경주에서 멋진 추입을 통해 우승을 거둬들여 상당히 기뻤다.”


-박태종은 아이돌 못지않게 팬이 많다. 기억에 남는 팬을 소개해 달라.

“지난 주 2000승을 달성한 후 렛츠런파크 서울 솔밭정원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는데, 팬분들 중 한분이 ‘2000승을 할 때까지 2000번 짝사랑해왔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들은 1998년도 입원 당시, 병문안 와준 분들이다. 그분들 중 한분이 본인 회사에 참한 아가씨가 있다며 한 여성을 소개시켜줬는데, 그렇게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 조교사로 전직할 생각은 없나.

“2000승을 달성한 현재도 목표는 말을 탈 수 있는 순간까지 기수로서 경주로를 달리는 것이다. 조교사로의 전향을 묻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아직까지 조교사를 염두에 두고 뭔가를 준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편 박태종의 2000승을 기념해 렛츠런파크 서울이 오는 28일 다양한 행사를 시행한다. 오후 1시부터는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 앞 시상대에서 특별시상식이 진행된다. 한국마사회 현명관 회장을 비롯해 한국마사회 임직원은 물론, 유관단체 협회장, 고객대표 등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 박태종 기수에게는 포상금과 트로피, 황금채찍(한국경마기수협회 제작) 등이 수여된다. 팬들을 위한 잔치도 마련했다. 고객 100명에게 사은품이 증정되며, 당일 렛츠런파크 서울 입장료도 면제된다. 또한 박태종 기수의 사진을 활용한 기념엽서 1000장도 배부할 예정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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