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박종환은 영화 ‘양치기들’의 주연을 맡기까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겼다. ‘양치기들’에 출연하면서도 “영화제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군대 고참이 해준 영화 얘기에 빠져 연출 공부
박탈감에 빠져 진로 고민 중 찾아온 연기 기회
마치 실화처럼…살아있는 연기에 영화계 주목
악착같이 목표를 이루려는 배우가 있는 반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연기자도 있다. 어떤 방식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각자의 성향에 따른 삶의 방식이다.
박종환(34)은 후자에 속한다. 영화의 세계에 들어서고 ‘양치기들’(감독 김진황·제작 카파필름)의 주연을 맡기까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겼다.
얼굴과 이름이 낯선 이 배우가 주연한 ‘양치기들’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현란한 상업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화려하지 않은, 작은 무대에 오른 배우가 관객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기도 한다. 박종환이 그렇다.
‘양치기들’에 참여하면서 박종환이 가진 목표는 단순했다. “영화제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 뿐이었다. 다른 결과는 꿈꾸지 않았다. 욕심을 덜어낸 덕분인지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2일 개봉해 관객과도 만나고 있다. 박종환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많은 독립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와 해결 방식이 좋았다.”
영화는 한때 촉망받는 연극배우였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쳐 지금은 역할 대행업을 하며 살아가는 남자(박종환)의 이야기다. 남자는 살인사건의 가짜 목격자가 돼 달라는 제안까지 받아들인다. ‘돈’ 때문이다.
‘양치기들’에서처럼 극한의 상황까지 가보지는 않았지만 박종환 역시 배우가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오게 한 힘은 자신감보다 ‘열등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 군에서 만난 고참이 영화 연출 전공자였는데 고참이 해주는 영화 얘기가 참 좋았다. 제대하고도 그때 들은 영화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영화가 궁금했다.”
연기자 박종환.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그렇게 박종환은 2007년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연출 전공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독립영화도 몇 편 경험했지만 재능에 대한 회의감만 커졌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니 영화라는 작업을 더 민감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그는 “곁눈질로 봐도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고,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꼈다”고 했다. 결론은 “자퇴”였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로 “휴학”을 택했다.
자신이 없어 포기한 영화의 꿈은 오히려 학교를 떠나니 명확해졌다. 호텔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빠짐없이 메모해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연출이 아닌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2009년 독립영화 ‘보통소년’이 그 출발이다. 그 뒤로 ‘잉투기’,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서울연애’까지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를 두루 거쳤다. 경험은 고스란히 실력으로 쌓였다.
‘양치기들’에서 박종환은 관객이 자주 보지 못했던, 그래서 살아있는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짓말의 늪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리는 모습이 가상의 설정이 아닌 ‘실화’처럼 보이는 이유다.
“감정 표현에 인색한, 배우답지 않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박종환이지만 그를 향한 영화계의 관심은 이어진다. 올해 초 900 만명이 본 ‘검사외전’을 출발로, 최근 또 다른 영화 ‘특별시민’과 ‘원라인’을 촬영하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