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툭하면 ‘18’, 모욕죄 해당하지만 ‘대부분 사과’ 처벌 안해

입력 2016-09-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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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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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선수와 가장 가까운 숫자


공연히 사람 모욕할 경우 처벌 대상
자책·반성의 경우 많아 처벌 힘들어


TV로 스포츠 중계를 보다보면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하나 있다. 실수를 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나왔을 때면, 선수들이 숫자를 외치곤 한다.

예전에는 방송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도 있고, 중계에 그다지 많은 카메라를 동원하지 않은 탓도 있어서 슬로비디오를 통해 재생하더라도 입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잡아내다보니 입 모양이 정확히 잡혀서 선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선수들이 사용하는 숫자가 대부분 일치하다보니 시청자 입장에선 더 쉽게 알 수 있다.

이쯤에서 정답을 말하자면 바로 ‘18’이다. 사실 숫자라고 표현했지만, 그 의미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 상대방이 없는 경우라면?

우리 형법은 제311조에서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추상적인 관념을 사용해 사람에 대해 경멸의 의사를 드러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나쁜 놈’, ‘죽일 놈’, ‘망할 놈’ 등이다. 즉, 일반적으로 욕설이라고 평가될 만한 경우는 형법상 모욕에 해당한다.



그런데 모욕에 해당하는 것과 모욕죄가 성립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또 ‘사람을’ 모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히’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관중 또는 TV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선수의 행위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공연성 요건도 충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선수들이 ‘18’을 외치는 경우는 대부분 스스로 실수를 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한 경우다. 즉,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나 반성의 표현인 것이다. 결국 ‘사람을’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의 사람이란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 즉 타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상대방이 있는 경우라면?

상대방이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모욕죄에 해당한다. 벤치 클리어링 상태에서 상대 선수에게 욕설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를 향해 ‘18’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처벌된 경우는 없다.

그 이유는 뭘까. 형법 제312조 제1항에서 ‘본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모욕죄를 친고죄(親告罪)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선수들끼리 순간적인 감정에 욕설을 하긴 했지만, 추후 바로 사과하거나 상대 선수가 이해해줘 고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 관중의 경우라면?

경기장에서의 모욕행위는 선수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흥분한 관중이 선수들을 향해 욕설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행위들이 단순한 무례나 불친절의 문제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모욕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 처벌되지 않는 이유는 선수들이 그에 대해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모른 체하면서 고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 고소를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안 될까?

얼마 전 국민 오락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웃픈’ 장면을 보았다. 한때 제7의 멤버로 불릴 만큼 자주 등장했던 김현철 씨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2006년 월드컵을 응원하는 장면을 찍을 때 PD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하라고 했단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편집해줄 테니 평소처럼 하면 된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촬영에 들어갔는데, 우리나라가 먼저 한 골을 먹게 됐다.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튀어 나왔는데, 바로 ‘18’이었다. 나중에 방송된 장면을 보니 앞 글자만 ‘×’자로 편집하고, 뒤는 그대로 내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여러 곳에서 질타가 쏟아졌다.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말을 쓸 수 있느냐’, ‘상식이 모자란 것 아니냐’ 등등.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질타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한도전에 출연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10년 동안이나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 기본은 서로에 대한 배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모두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끼리 용서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관중과 시청자까지 용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중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존중하고 진정한 인격체로 대할 때, 선수들도 좀더 멋진 플레이로 보답할 것이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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