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평론가의 시선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최근 상황은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별하기 힘들게 한다. 어쩌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조차 혼란스럽기만 하다. ‘비현실적 현실’에 대한 풍자는 그래서 그 혼돈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더욱 또렷한 현실감을 안겨주는지도 모른다.
“기가 차 웃음도 나오지 않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으면서도 신랄하게 꼬집으려는 듯 사태를 풍자하는 콘텐츠가 대중문화계 전반을 뒤덮고 있다. 각종 방송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는 물론 SNS, 게임 등 무대와 주체를 달리하며 퍼지고 있는 풍자와 패러디의 다양한 콘텐츠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국민적 허탈감과 비판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과거에도 특정한 사람과 현상을 향한 풍자와 패러디는 대중문화 콘텐츠로 꾸준히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방위로 확산돼 그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국민적 공분을 재미와 웃음으로 승화시켜 통쾌함이라도 맛보겠다는 바람과 의지가 엿보인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풍자는)권력과 재력 등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나 또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면서 일반 대중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보더라도 단순히 국정농단 행태를 조롱하기 위한 풍자나 패러디를 넘어 성난 민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의 높은 관심만큼이나 분노가 크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방송 개그프로그램이나 시사프로그램에 한정돼 있거나, 정치적 사안에 거리를 두었던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며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도 과거엔 어느 정도 기준선이 있었다면 이번엔 이미 그 선을 넘어섰다. 특정 개인을 조롱하는 것도 자칫 법에 저촉될 수 있지만, 대중의 억울함과 박탈감이 큰 현실은 이미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