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과 KBO리그, 아름다운 이별을 말하다

입력 2016-12-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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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IA 브렛 필-전 kt 마르테-전 롯데 린드블럼(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1998년은 KBO리그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었던 때로 기억된다. 낯선 손님들이 대거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방인’ 혹은 ‘용병’이라 불렸던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 처음 발을 들인 시기가 바로 그 해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그 사이 KBO리그는 양적 팽창을 이뤄냈다. 8개이던 팀 수는 10개로 늘었고, 외국인선수 역시 1998년 16명(팀당 2명)에서 현재 30명(팀당 3명)으로 늘어났다. 숫자는 조금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은 한결같다. 잘 뽑은 외인 1명은 국내 선수 2~3명 몫을 거뜬히 해낸다.

이에 따른 구단의 대우 역시 여느 스타급 못지않다. 팬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 시즌이 끝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진, 나이 등의 이유로 수많은 외인들이 시즌 종료가 무섭게 한국을 등져야했다.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겨를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올겨울은 유독 훈훈한 이별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선수는 진심이 담긴 편지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한편, 팬들은 따뜻한 메시지로 떠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첫 타자는 KIA 브렛 필(32)이었다. 지난 3년간 내·외야를 오가며 꾸준한 성적을 냈던 그는 올해를 끝으로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됐다. 그러나 3년 동안 쌓인 정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그는 7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말로 짤막한 편지를 남기며 감사를 표했다. 인성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던 모습은 떠나는 순간까지 그대로였다.

뒤를 이은 선수들은 롯데 조쉬 린드블럼(29)과 kt 앤디 마르테(33)였다. 린드블럼은 셋째 딸인 먼로가 심장병을 앓고 있어 타국에서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경황이 없던 와중에도 린드블럼은 구단을 통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메시지는 간결했다. 한국에서 받은 응원과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15일엔 마르테가 편지 행렬에 동참했다. 그 역시 2년간 쌓은 정을 표한 뒤 비행기에 올랐다.

이러한 장면은 KBO리그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국엔 더스틴 니퍼트(6년차·두산)와 앤디 밴 헤켄(5년차·넥센), 헨리 소사(5년차·LG) 등 장수 외인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언제 어떻게 팬들 곁을 떠날지 모를 일이다. 조금 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혹여 이별이 결정되더라도 팬들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앞선 3명의 사례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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