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DA:다] 대종상, 대리수상만 문제? 웃픈 ‘아무말 대잔치’

입력 2016-12-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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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영과 김병찬-이병헌-조정래 감독-거룡 회장(맨 위 왼쪽으로 시계방향으로).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시상식 영상 캡처

청문회 못지않은 ‘아무말 대잔치’였다. 논란에도 개최를 강행한 제53회 대종상이 대리수상뿐 아니라 전문성 없는 MC진과 일부 시상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김병찬 아나운서와 공서영 배우 이태임이 진행을 맡은 가운데 제53회 대종상 영화제가 27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영화제는 다수의 부문이 대리수상으로 수상된 탓에 ‘시간이 남아도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김병찬 아나운서는 멘트를 늘어뜨리고 늘어뜨리다 결국 “(앞에서) 요청을 받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고백했다.

MC에게 주어진 부담감은 방금 본 사람의 얼굴도 잊게 할 만큼 컸나 보다. 김병찬 아나운서는 시나리오상에 이어 감독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된 우민호 감독이 무대에 올라가고 있는데도 “(우민호 감독이) 사정상 못 나왔다”라고 말했다. 우 감독은 몇 분 전 ‘내부자들’로 시나리오상을 직접 수상했다. 때문에 김병찬의 실수가 더욱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공서영 또한 진행이 미숙하기는 마찬가지. 공서영은 편집상 조명상에 이어 촬영상까지 대리수상하러 온 아역배우 김환희에게 “또 멘트를 해달라”고 무리한 요청을 했다. MC진은 결국 시상식 말미 미숙한 진행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멘트는 시상 무대에서도 쏟아졌다. 넋두리와 토로의 장이었다. 공적인 시상식이 아닌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말들이 줄지어 나왔다.

거룡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은 “앞으로는 수상자들에게 깨끗하고 투명한 트로피를 줄 수 있도록 우리 영화인들이 반성해야 한다. 많은 배우가 참석하지 않아 배우협회 회장으로서 참 가슴이 아프다”면서 “대한민국 문화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문화계에 황제’라는 차은택을 길러내 우리 문화인들을 타박하는 것인가 싶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종상을 둘러싼 갈등과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터무니없는 발언이었다.

김보연은 방금 전 남우주연상을 받고 무대를 떠난 이병헌에게 뜬금없이 ‘일침’을 던져 웃픈 상황을 연출했다. 그는 여우주연상 시상에 앞서 “이병헌이 옛날에는 까칠했는데 겸손해졌더라. 이병헌을 볼 때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시상식 가운데에서도 이병헌은 어김없이 명언에 가까운 멋진 말을 남겼다. 남녀주연상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한 이병헌. 참석을 결정하기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그의 소감은 차분했고 정갈했다.

이병헌은 “한 20년 전에 신인상으로 대종상 무대에 선 기억이 난다.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무대 위에 서고 싶은, 명예로운 시상식이었다.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나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시상식에 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상을 받은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이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대종상이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다.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라며 “50여년의 긴 시간동안 그 명예를 찾는 데까지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스럽게 없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병헌은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인지 모르지만 변화라는 것은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노력하는 순간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언젠가 후배들이 20년 전 내가 설레고 영광스러웠던 마음과 똑같은 기분으로 대종상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 대종상을 만들 때 선배들이 그러했듯 이제 우리 후배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당부했다.

영화 ‘귀향’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조정래의 수상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조정래 감독은 “어릴 때 대종상영화제를 보며 꿈을 키웠다. ‘저 자리에 언제 한번 객석에서나마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선배들과 별들 같은 분들을 모신 자리에서 큰 상을 받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감독은 “‘귀향’이 상영할 때마다 타지에서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영령이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했다. 감히 위안부 피해자 영령들 앞에 이 상을 바친다.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귀향’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동포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타지에서 힘들게 끝까지 대한민국의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재일교포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며 “함께 온 강하나 양과 재일교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수상 소감이었다.

한편, 이날 최우수작품상은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의 품에 안겼다. ‘내부자들’은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기획상 시나리오상과 감독상을 수상, 5관왕을 차지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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