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은 한국과 일본, 미국야구에서 모두 마무리투수로 뛰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구원왕을 차지한 바 있는 오승환은 역대 최초 한미일 구원왕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부족한 걸 채워서 가능했던 메이저리그
-새해 소망이 궁금하다. 3가지만 꼽아 달라.
“건강한 게 첫 번째 같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 일본에서도 우승은 못했지만 재팬시리즈 무대는 밟았다. 마지막으로 시즌 시작부터 마무리를 맡는다면, 한국 선수 최초로 세이브 타이틀에 도전해 보고 싶다. 한미일 구원왕은 최초 아닌가.”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던 세인트루이스가 6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시즌만 놓고 보면 굉장히 아쉽지만, 반대로 기회라고 생각한다. 항상 포스트시즌에 나가던 팀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데, 떨어지면 전력 보강의 필요성을 느낀다. 한편으론 아쉽지만, 올해엔 기회가 돼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메이저리그에 오길 잘했다 생각하지 않나.
“잘했다는 것보다 안 왔으면 정말 많이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성공을 확신한 건 내가 아닌 대표님(에이전트인 스포츠인텔리전스 김동욱 대표)이다. ‘가면 무조건 잘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사실 난 항상 물음표였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물론 1년 잠깐 했다고 성공했다고 말하긴 좀 그런 것 같다.”
-좀더 젊었을 때 빅리그에서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건 결과론이다. 올해 성적만 놓고 더 잘됐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반대로 일찍 가서 안 좋았으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거치면서 부족한 걸 채워나갔기에 나아진 것이다.”
-그동안 오승환은 의문부호를 지워가며 살아왔다. ‘투피치로 될까’, ‘일본에서 통할까’에 이어 이번엔 ‘메이저리그에서도 될까’라는 물음표를 또 지웠다.
“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누가 판단할 때는 항상 예상이고 예측이지, 그게 맞는 건 아니지 않나. 해보고 나서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도 항상 물음표를 갖고 간다. 일본이나 미국에 가기 전엔 나도 (결과를) 몰랐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마운드에 섰을 때만큼은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다.”
-사람들은 주변의 평가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괜히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해서 안 되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안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안한다. 몸만 아프지 않으면 부딪히고 부족한 건 내가 찾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무적 상태에서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1년 전으로 시계를 돌이켜보자. 무적 상태에 KBO 소속이 아니었는데도 징계까지 받았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돌이켜보면 정말 전부 다 힘들었다. 그래도 운동을 관둔다는 생각은 안했다. 대표님과 미국(괌)에 가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대표님을 믿고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세인트루이스의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모두가 팀 이름을 들었을 때 놀랐다.
“나도 의아했다. 누구나 다 의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낙 불펜이 좋았고, 협상 과정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팀이었다. 나 역시 많이 놀랐다.(웃음)”
-한국과 일본을 거쳤지만, 미국은 또 다르다. 팀에 처음 갔을 때 많이 낯설지 않았나.
“팀 동료들이나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친구들, 코칭스태프들도 그렇고 정말 다 편하게 해줬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동료들과 잘 지냈다. 마이크 매서니 감독 같은 경우엔 캠프 때부터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서 해온 것처럼 ‘네 컨디션에 맞춰서 해라’고 얘길 해줬다. 덕분에 오버페이스하지 않아 좋은 결과가 있었다.”
-올해 메이저리그 루키로서 자리를 잡는 과정이 KBO리그 신인 시절이던 2005년과 매우 비슷했다.
“그런 생각은 몇 번 했었다. 그렇지만 크게 와 닿거나 그런 건 없었다. 사실 난 올 시즌에 성적이나 다른 목표를 갖기보다는, 하루하루 공 1개, 1개에 집중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웃음)”
-그래도 잠시 그때로 돌아가 보자. 선동열 신임 감독이 2004년 11월 대만 친선게임 때부터 기용했는데 부진했다. 그러나 이후 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치면서 가능성을 보이더니, 개막 엔트리에 들어 필승조, 시즌 중에는 마무리까지 꿰찼다. 캠프 때부터는 올해와 거의 비슷하다.
“과정도 그렇고, 성적도 참 비슷하긴 하다(2005년 10승1패 11홀드 16세이브 방어율 1.18).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번엔 시키는 대로 하는 건 똑같은데 생각은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물론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전부 다 처음이라 캠프 때도 쫓아가기 버거웠다.”
-천하의 오승환이 버거울 정도라,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사실 메이저리그 캠프가 생소했다. 그리고 처음 삼성에 입단했던 신인 때는 나도 처음이고 어렸지만, 친구들이 있었다. 여긴 동양인이 나와 통역(구기환씨), 딱 둘뿐이다. 다른 부분이 있었다. 사실 운동하고 공을 던지는 등 움직임은 비슷한데, 운동하는 스타일, 준비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많이 달랐다. 처음 해보니 그런 걸 못 쫓아가고 허둥지둥하는 게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사진= ⓒGettyimages/이매진스
● 세인트루이스, 그리고 메이저리그
-처음 빅리거들과 함께 뛸 땐 어떤 기분이 들었나.
“운동장에서 함께 운동할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된 뒤 한국이나 일본에서 TV로만 봐온 선수들과 맞닥뜨렸을 땐 ‘정말 메이저리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돌부처’라지만, 그런 선수들과 직접 상대했을 때 떨리진 않나.
“처음엔 당연히 있다. 다 처음 보는 선수들 아닌가. 또 한국과 일본에선 외국인선수 1~2명과 상대하는데 여긴 다 덩치 큰 선수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마운드에서 대단한 선수들과 상대하는 게 편하고 좋았다.”
-어떤 면에서 좋았나.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가 날 판단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나. 각 팀의 하위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기존의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결과를 냈던 선수들과 상대하는 게 더 정확한 결과 아닌가. 안타를 맞는 게 당연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특급 선수들을 상대로 잘하면 나도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인이었던 2005년처럼 시즌 중에 마무리로 승격했다. 매서니 감독은 어떤 식으로 얘길했나.
“스스로 준비는 하고 있었다. 감독이 날 배려해서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언론엔 케빈 시그리스트와 조나단 브록스턴, 그리고 나를 번갈아 기용하겠다고 말했는데, 세이브 상황에 항상 내가 나갔다. 팀원들과의 관계도 생각했던 것 같다.”
-루키가 마무리를 꿰차면서 다른 투수들과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난 항상 감독, 코치도 중요하지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잘하는 모습으로 그 친구들이 인정할 수 있는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캠프 때부터 다른 불펜투수들과 워낙 친하게 지내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시기하거나 시비를 거는 선수들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그 친구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다녔다. 한국에선 선배가 밥을 사는 문화라고 말하니까 정말 좋아하더라.”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세인트루이스에서 포수 야디어 몰리나(왼쪽)를 만났다. 스스로 “정말 복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베테랑 몰리나는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성공적 데뷔 시즌을 정성껏 도왔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세인트루이스라는 팀과도 잘 맞는 것 같다. 야디어 몰리나라는 최고의 포수도 있었다.
“그동안 좋은 포수들과 많이 했다. 투수와 포수는 서로 맞춰가야 하는데 난 어려움이 없었다. 투수 입장에선 정말 복 받은 셈이다. 우리 팀은 분위기가 차분하다. 튀는 선수들도 없다. 감독님도 위트가 있고, 투수코치(데릭 릴리퀴스트) 같은 경우 8회에 나가게 되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먼저 얘길 해줬다. 또 난 괜찮다고 하는데 코치가 먼저 ‘8회에 나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할 때도 있었다.”
-메이저리그 팀의 투수 관리는 어떤가.
“선수의 출전 상태 판단은 전적으로 트레이너의 권한이다. 내가 말하기 전에 트레이너가 상의해서 보고가 올라간다. 혹사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잘 보면 3연투 이상 한 적도 없고, 연투를 할 땐 개수가 많지 않았다. 2연투하고도 쉴 때도 많았다.”
-운동하는 패턴에 변화는 없나.
“시즌 중엔 웨이트트레이닝을 항상 경기 전에 했다.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하더라. 이전까진 타이밍을 보고, 경기 마친 뒤에 많이 하는 편이었다. 경기 전 웨이트트레이닝이 가능한 건 원정을 가더라도 홈구장처럼 시설이 다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원정팀에겐 제약이 많다. 메이저리그는 홈에서 하던 걸 원정 가서도 똑같이 할 수 있었다. 물론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필드처럼 안 좋은 구장도 있지만, 대부분 원정팀도 시설이 잘돼 있고, 라커룸도 좋다. 시간만 잘 활용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잘 이용했던 것 같다.”
-야구장 밖, 타지 생활은 어떤가.
“야구장보다 일반적인 생활에서 싸워야할 게 더 많다. 그런 부분이 야구까지 연결된다. 일본은 가까우니까 한국이 더 생각나는데, 미국은 아예 머니까 그냥 다 받아들이게 되더라. 경기 끝나면, 밥 먹고 일찍 자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운동한다. 메이저리그 선수 중에선 경기 전에 골프도 치고 하는데 난 큰 취미가 없어 야구장에 나가기 전에 다른 일은 잘 안한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생년월일=1982년 7월 15일
▲출신교=도신초~우신중-경기고~단국대
▲키·몸무게=178㎝·93㎏(우투우타)
▲프로 입단=2005년 삼성 2차 1라운드 전체 5순위(계약금 1억8000만원)
▲프로 경력=삼성(2005~2013)~한신(2014~2015)~세인트루이스(2016~)
▲2016년 연봉=250만달러(옵션 제외)
▲2016시즌 성적=76경기 6승3패 19세이브 14홀드 방어율 1.92
▲통산 성적(KBO)=9시즌 444경기 28승13패 277세이브 11홀드 방어율 1.69
▲통산 성적(NPB)=2시즌 127경기 4승7패 80세이브 12홀드 방어율 2.25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