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배우 박정민도 그랬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연기자가 됐고 작품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흥행’과 ‘성공’을 위해서 내 ‘신념’과 ‘소신’을 어느 정도 버려야 할 때가 오더라. 그런데 이게 얼마만큼 타협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고민이 쌓이다 보니 ‘아, 내가 연기를 그만할 때가 됐나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동주’ 촬영 전까지만 해도 연기를 안 하고 싶었어요. 거의 슬럼프의 끝이었죠. 도피유학까지 생각했었어요. 어디로요? 영국 가려고 했었어요.(웃음) 제가 좋아서 한 건데 어느 순간 입이 ‘쭉’ 나와있더라고요. 이 일에 좀 지쳐있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관두려고 했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제 머리채를 쭉 잡아서 ‘동주’ 촬영장으로 데려다 놓으셨죠.”
‘동주’를 찍으며 마음을 추스른 촬영을 마치고 3일 뒤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 촬영에 임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세상을 발칵 뒤집은 아티스트로 탄생한 ‘지젤’(류현경)과 또 다른 아티스트이자 미술관의 관장인 ‘재범’(박정민)의 살짝 놀라운 비밀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시대에 ‘예술의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과 독창적인 위트로 가득 채운 영화다. ‘미술’을 소재로 한 영화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물음이자 동시에 답을 찾는 작품이다.
그는 “영화에 비유하자면 저는 ‘지젤’같은 사람이죠. 제가 나만의 방법으로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싶어하는 지젤이라면 ‘재범’은 지젤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마 이쪽 분야에 계신 분들은 다 겪고 있을 일”이라고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배우’인 제가 그리는 제 미래가 있다면, 제 매니저가 그리고 있는 제 미래도 있을 거란 말이죠.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의견충돌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거기서 내가 하고 싶은 소신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며 타협을 봐야 하는 건지 생각이 많죠. 또 그 결과물은 어떨지도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 고민들이 많아요.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가 제가 그런 고민을 할 때 받은 거였거든요. 하려는 말이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죠.”
그렇다고 박정민이 작품을 자기 입맛대로만 고른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들어온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 들고 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 인물이 가진 이야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연기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납득이 되는 인물이라면 그 역할의 분량이 얼마나 되건 상관이 없지만 캐릭터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의문이 들어 고민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주변 분들은 제가 이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참 생각이 많아져요. 거기서 충돌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도 그래요. 작품과 제가 서로에 도움이 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네가 하는 고민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매니저에 말을 들었고, 또 이 영화 제작사 분께서 ‘파수꾼’ 당시 마케팅을 하셨던 분이라서 돈독한 사이예요. 결국 사람들을 믿고 이 작품을 택하게 됐어요.”
그러면 고민에 대한 해소는 됐을까. 박정민은 “아직”이라고 답하며 “배우 생활 끝날 때까지 이 문제 갖고 싸우지 않을까.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고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가 아니면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박정민이 지금까지 찾은 답 중 하나다.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래했던 일이 ‘연기’인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거겠죠. 아직 대학교 졸업을 못해서 학교를 갈까 생각도 드는데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학교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을 때 가고 싶어서 조금 더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도 학교에 가면 11살 차이가 나는 후배들하고 지내야 하는데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하.”
현재 누구보다 연기를 하고 싶은 상태(?)가 된 박정민은 작품 욕심도 크다.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젠 출연료가 비싸지지 않았는지 장난스럽게 물어보니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바깥에 나가면 못 알아보는 분들이 더 많다”라고 웃었다.
“배우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전 아직 멀었어요. 그래서 흥행작도 많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내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배우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독립영화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단편 영화 찍을 때 스태프들이랑 영화 이야기하면서 촬영하는 게 정말 좋거든요. ‘파수꾼’, ‘동주’ 찍을 때 되게 행복했었어요. 그래서 좋은 작품으로 연기할 기회가 온다면 크기에 상관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