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한 포수 진갑용(왼쪽)과 홍성흔은 이제 유니폼을 벗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진갑용은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홍성흔은 미국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다. 먼 훗날 맞은 편 덕아웃에서 이들이 맞대결을 펼칠 날이 올까. 스포츠동아 DB
당시 신인 드래프트 2차지명은 그 해 순위 역순으로 지명 순서를 정했다. 고려대 4학년에는 부산고가 배출한 국가대표 에이스 손민한과 1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포수라는 극찬을 받은 진갑용이 있었다. 롯데가 1차 지명으로 한명을 택하면 다른 한명은 2차 지명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롯데는 고민 끝에 손민한을 1차 지명했고, OB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2차 전체 1순위로 진갑용을 택했다. 진갑용은 아마추어시절 애틀랜타올림픽대표팀에서 2차례 4번, 5차례 5번 타자로 출전하는 등 공격능력도 대단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팀 이름을 바꾼 두산의 새로운 안방마님의 주인공은 1999년 1차 지명한 홍성흔이었다. 홍성흔은 경희대 4학년 때 사상 처음으로 프로야구선수들이 아마추어대회에 참가해 ‘드림팀 1기’로 꼽히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주목받는 포수였다.
당시 방콕아시안게임대표팀 포수 3명은 프로 3년차 진갑용, 2년차 조인성, 그리고 대학교 4학년 홍성흔이었다.
두산은 1999년 신인지명 때 권오준, 유동훈 등 지역 연고지 출신 투수들을 외면하고 포수 홍성흔을 택했다. 이미 베테랑 포수 김태형(현 두산 감독)과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진갑용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포수 포지션을 중시하는 팀 철학은 홍성흔이 정답이었다. 진갑용과 홍성흔이 인생이 걸린 선의의 라이벌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두산 포수 시절 홍성흔.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1999년 당시 10년차 포수였던 김태형 감독은 “스프링캠프부터 진갑용과 홍성흔의 경쟁이 대단했다. 청백전을 할 때 같은 포수가 타석에 서면 복잡하지 않게 사인을 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홍성흔은 진갑용이 나오자 몸쪽 붙이고 다양한 변화구 사인 내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결국 두산은 1999시즌 교통정리에 나섰다. 시즌 중반 진갑용을 삼성에 트레이드했다. KBO리그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삼성에서 조범현 배터리 코치를 만나 최고의 수비능력을 갖춘 포수로 진화한 진갑용은 무려 7차례나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홍성흔도 두산에서 국가대표 포수로 명성을 날렸다. 선수생활 후반기는 전문 지명타자로 변신해 특급 타자 반열에도 올랐다.
2000년대 삼성과 두산에서 리그 최고의 포수로 자웅을 겨뤘던 진갑용과 홍성흔은 영광스러운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빼어난 화술을 자랑하는 진갑용, 홍성흔은 모두 은퇴 직후 방송사에서 해설자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 해외연수를 택하며 미래의 감독으로 진화 중이다.
2015시즌을 끝으로 우승반지 7개와 함께 은퇴한 진갑용은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연수 중이다. 진갑용은 “매일매일 소프트뱅크의 훈련을 보고 느낀 점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있다. 1군 주전선수도 수비 훈련 때 실수가 나오면 완벽해 질 때까지 반복을 한다. 전술과 육성 등 많은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에서 연수 중인 진갑용. 스포츠동아DB
지난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홍성흔도 방송사의 치열한 스카우트를 마다하고 미국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 팀에서 연수 중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정식 코치가 되고 싶다”는 큰 꿈을 그리며 영어공부도 열심이다.
두산은 이제 포수사관학교를 넘어 베어스 포수 출신 명장들을 배출하고 있다. 진갑용과 홍성흔은 이미 선수시절 빼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양 쪽 덕아웃에서 마주보고 경기를 지휘할 베어스 포수 출신 감독 라이벌 대결 2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