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기神’ 설경구 “쉽게 대한 연기, 통렬하게 반성 중”

입력 2017-05-17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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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이후 17년 만에 칸 영화제를 가게 됐어요.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감독님 뒤만 졸졸 쫓아다녔어요.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기념사진 하나 찍은 것과 이창동 감독님과 숙소 빌려서 지낸 것 정도 기억이 나요. 정말 기분이 얼떨떨해요. 아마 지금 임시완이 그런 걸?(웃음) 올해 가면 좀 좋은 풍경도 눈에 담아오려고요. 처음 어리바리했던 때보다는 좀 낫겠지. 하하.”

설경구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 제70회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설레고 기뻤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라 더 놀랍고 좋았다고. 그는 “김희원과 전혜진에게 상영이 끝나면 상 받은 것처럼 두 손 들고 환호성 지르기로 입을 맞췄다”라고 하면서 “영화 홍보 되라고”라는 진심을 드러내기도 해 웃음을 자아냈다.

‘불한당’에서 설경구는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불한당이 된 남자 ‘재호’ 역을 맡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작품을 선택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범죄액션에 ‘잠입수사’라는 표면적인 면에서는 뻔했고 한석규·김래원 주연 영화인 ‘프리즌’과 자칫 개봉 시기가 맞물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변성현 감독은 자기가 더 먼저 썼다고 하는데, 영화가 먼저 나오는 게 임자죠.(웃음) 그래서 변 감독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솔직히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하니까 확실하게 다르게 찍을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했어요. 꾸밈없는 말투에 솔직한 게 마음에 들었죠.”

재호 캐릭터를 연구하며 설경구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극 중에서 되바라지게 웃다가도 가끔은 속내를 툭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그 인물이 말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의뭉스럽다. 이에 대해 “한 가지 톤으로 연기를 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뒤죽박죽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로 나름 계산을 하며 연기를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옆모습이 비칠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에 주구장창 옆모습을 찍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옆모습 덕을 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에는 “좀 더 놀았어야 했다”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불한당’은 20년 연기 생활을 한 설경구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젊은 감독과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서 배우로서 많은 것을 얻어갔다고 말했다. 특히 콘티 작업을 할 때 연출 감독 뿐 아니라 촬영감독, 미술감독의 의견이 일치했을 때 콘티가 완성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콘티를 잘 모르지만 정성이 보였어요. 마치 그런 거 있잖아요? 뭔가 하나에 확 꽂히는 애들을 보는 것 같은? 뭔가 하나에 빠지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오죽하면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콘티를 보여달라고 그랬을 정도니까요. 만화책 읽는 것처럼 아주 잘 읽히더라고요.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임하는 스태프 모습을 보면서 자극이 많이 됐어요.”

그렇다면 젊은 배우이자 후배 임시완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아직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임시완과의 호흡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묻자 설경구는 “정말 많이 노력했고 잘 해냈다”라며 “현수(임시완)의 성장같이 이 영화가 임시완에게 배우로서 자라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완이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하는 배우잖아요. 마침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불한당’의 현수와 시완이는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첫 발을 디딘 ‘미생’과 같은 느낌이요. 현수가 ‘불한당’에서 사나이의 완성본을 드러내지 않듯이 시완이도 지금은 배우로서 완성되는 과정을 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기대가 되고요.”


‘불한당’을 기점으로 설경구가 다시 충무로 흥행 배우로 오를 것이라는 말도 많다. 배우 자신도 시사회가 끝난 뒤 가장 많이들은 말이 “신선하다”라는 말이었다. 전작들의 흥행이 좋지 않았던 것을 언급하며 지난 1~2년간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동안 제가 연기를 참 쉽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렬히 반성을 하고 살았어요. 지난해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연기를 그만해야 되는지, 이렇게 내려오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작품을 할수록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참 많이 했고 극복 중입니다.”

그와는 별개로, 최근 비슷한 장르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충무로에 다양한 장르가 많았다.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지는 것 같아서”라며 “그냥 극장에 나오면 잊어버리게 되는 영화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제 저도 어느덧 51세가 됐더라고요. 이제는 기억에 남는 영화를 찍고 싶어요. 하루라도 생각이 나는 그런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예전에도 저는 ‘관객’, ‘흥행’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좋은 작품, 마음에 남는 작품에 더 관심이 가게 돼요. 영화와 함께 계속 인생을 보내야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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